뉴질랜드 남섬의 아름다운 호반마을 퀸스타운. 거대한 빙하호 와카티푸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코로넷픽 스키장 하늘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점심때면 여기에 찾아와 혼자 식사 하는 한 한국인 젊은이가 있었다. 가슴의 명찰에는 ‘박수철’이라는 한국이름이 영문으로 박혀 있다. 그는 이곳 스키강사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국제적인 스키강사들은 거의 모두가 ‘겨울철새’다. 지구 반구의 남과 북을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눈을 찾아서다. 뉴질랜드에 봄이 오면 눈에 파묻히는 알프스와 로키산맥으로 떠난다. 박씨가 이 ‘철새’무리에 끼여든 것은 96년 여름. 그후 뉴질랜드와 캐나다 휘슬러스키장을 오가며 외국인들에게 스키기술을 가르쳤다. 그런 그가 올 시즌에는 캐나다행을 포기하고 서울에 머물고 있다. 스키비디오 ‘카빙테크닉’과 기술서를 내기 위해서였다.
지난주 이 비디오가 나온 뒤 한국의 스키마니아들 사이에는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다. 도저히 한국 스키어가, 그것도 혼자 만들었다고 보여지지 않을 만큼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출연하는 스키어들은 모두가 세계 최고수준의 스키데몬스트레이터(스키기술권자)들이고 선뵈는 기술은 아직까지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카빙회전 기법. 게다가 촬영도 스키어들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뉴질랜드 서던알프스산맥의 코로넷픽, 더 리마커블스, 마운트 헛 스키장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마음을 붙잡는 것은 이 비디오를 제작한 한국스키어 ‘박수철’이었다.
“통일이 되면 백두산에 스키장을 만드는 게 제 평생의 꿈입니다.”
그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스키를 탄다고 말한다. 고려대 체육과 졸업후 경영학과에 학사편입을 한 것도, 졸업후 외국스키장에 취직해 일해 온 것도 모두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고려대 스키부를 이끌던 그는 배낭에 스키를 메고 알프스 스키장을 섭렵했다. 모굴스키(자유형스키의 한종목)를 배우기 위해 한 시즌내내 강사로 일해 번 돈으로 일본 원정을 다녀오기도 한 억척 스키어다. 코로넷픽 하늘에 날리는 태극기도 그 덕분이다.
〈조성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