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기능이 다소 바뀌긴 했지만 10년전인 88년부터 3년간 재무부장관을 지내고 ‘재수’하는 이장관의 역량은 경제회생 여부의 한 변수가 됨직하다. 2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재경부장관실을 노크했다.
―우리 경제가 정말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대로만 해서 금년 내년 고생하면 2000년에는 좋아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렇다고 8%의 성장과 2.5%의 완전고용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우리도 중성장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성장잠재력 5%, 높아야 6%에 실업률 4∼5% 정도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지금대로 한다는 건 무얼 어떻게 한다는 뜻입니까.
“네가지 개혁 즉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재정과 정부부문의 개혁을 제대로 추진한다는 얘기지요. 여기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금융경색이 대표적인 고통인데 각계각층이 분담해 고도산(高倒産) 고실업을 참아내야 합니다.”
―당장 올해는 어떨까요.
“성장률을 마이너스 1% 정도로 봅니다. 따라서 실업자도 늘어날 겁니다. 연평균 1백30만명으로 잡고 있지만 피크인 5, 6월에는 1백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은행 개편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까요.
“경영개선계획을 낸 은행들에 대한 실사작업이 6월말에 끝나봐야 개혁 후의 모습이 그려지겠지요. 다만 경쟁력이 약한 은행은 강제적으로 우량은행에 합병되거나 영업을 양도하는 방식으로 정리될 겁니다. 또 대형화를 위한 우량은행간의 합병이 예상됩니다. 9월까지 1단계 개혁을 마무리하면 금융경색이 해소될 겁니다. 하루빨리 유동성 부족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고용조정으로 이어지겠군요.
“은행들을 합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일부 인력의 슬림화가 불가피하겠지만 대량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겁니다.”
―금융 구조조정을 위해 공채를 64조원어치나 발행하면 이자부담과 매각손실 등 국민부담이 5년간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국민이 부실정리의 봉이라는 지적이 강합니다만….
“국민들에게 부담을 더 지운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금융기관에만 구조조정을 맡긴다면 부실규모가 크기 때문에 역부족입니다. 금융개혁이 늦어지면 금융경색이 지속되고 살만한 기업까지 도산해 부실채권이 더 늘고 실업도 늘어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어요. 하루빨리 금융기관 부실을 정리하는 것이 국민경제 전체로 봐서 효과적입니다.”
이장관은 “부실 금융기관 경영진과 주주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구상권 행사 등을 철저히 하고 범법행위는 형사고발 조치 등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조사가 최근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의 매각계획에는 진전이 있습니까.
“두 은행의 인수에 단독 또는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국제경쟁입찰에 부칠 겁니다. 국내외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는 측이 있습니다.”
한편 이장관은 이밖에 몇개의 국내 은행을 거명하면서 이들 은행에 대한 외국 금융투자기관의 자본참여 협상이 성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돼갑니까. 금융개혁과의 선후 문제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만….
“기업개혁의 핵심은 대기업 구조조정입니다. 숫자가 많지는 않겠지만 정리될 대기업은 이달말에 선정돼 6월부터 즉각 퇴출될 겁니다. 퇴출 대상은 그룹 단위가 아니라 기업(계열사)별로 따지게 됩니다. 은행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그룹과 상의합니다. 협의가 거의 마무리단계에 와 있어요. 소유주가 같을 경우 우량 계열사를 팔아서라도 부실 계열사를 꼭 살리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퇴출대상이 아닌 대기업은 자산매각 외자유치 등을 동시에 추진해 자력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기관보다는 (구조조정 속도가) 더 늦을 것으로 봅니다. 기업은 2년간 자기자본비율 등을 국제기준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외국에서 차입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재무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뜻이지요.”
―부실기업에 대한 협조융자와 화의 남발로 자금흐름이 왜곡돼 정상적 기업까지 부실화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다는 시각도 있구요.
“완전히 죽이는 것보다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고려는 그렇게 없었습니다. 이달말 부실기업 판정이 내려지고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이 문제도 동시에 해결될 겁니다. 6월부터는 퇴출해야 할 기업의 화의나 협조융자에 채권은행들이 동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예금자보호 문제는 어떤 식으로 정리됩니까.
“전문가 의견과 외국사례를 수집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중입니다. 금융 구조조정이 진행중이어서 지금 말하면 영향을 미칩니다. 빠른 시일내에 결정하겠지만 지금은 의지가 있다는 점만 밝히겠습니다.”
정부는 2000년말까지 예금 원리금을 전면보장한다는 정책을 일부 수정해 이자에 대해서는 부분보장 방식으로 전환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환율대책은 어떻게 가져갈 생각입니까.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만….
“시장에 인위적으로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환율은 어디까지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원화 환율이 내릴 수도 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다고 보는 쪽은 환율이 내릴 것으로 보고 신뢰도가 낮다고 보는 쪽은 오를 것으로 얘기합니다. 정부는 어떤 전망도 하지 않고 그때그때 시장상황에 따라 대처할 겁니다. 다만 올해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2백30억달러 이상으로 기대되고 외채의 만기연장도 순조롭고 외자 신규도입 전망도 있어 외환수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소득세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재도입을 검토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리〓박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