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최태섭한글라스회장]유리산업 일생바친 재계의 師表

  • 입력 1998년 5월 31일 20시 40분


‘기업인이란 하느님이 잠시 맡겨놓은 것을 관리할 뿐이다.’

31일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故) 최태섭(崔泰涉)한글라스명예회장은 근검절약 정신을 바탕으로 평생을 한우물(유리)만 판 한국 재계의 사표(師表)였다.

“총수들은 기업이 자기 것이란 속된 생각을 버려야한다”며 그가 누누이 강조한 ‘청지기’론은 공동 창업자인 이봉수(李奉守·81)그룹회장 김치복(79년 작고)전사장과 40년 넘게 불화 한번 없이 한글라스를 이끌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평안북도 출신인 세사람은 독실한 기독교신자(장로)로 공산당의 핍박을 피해 월남했다.

최명예회장은 1957년 유엔한국재건단이 전후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불하한 인천의 유리공장을 창업동지들과 함께 인수, 오늘날 그룹 모체가 된 한국유리를 키워냈다. 한국안전유리 한국특수유리 등 7개 유리관련 계열사를 창업, 한국유리산업을 선진국과 경쟁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도 그의 업적.

전경련 고문을 지냈지만 다른 그룹 총수들은 최명예회장이 외제차를 타거나 골프채 잡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양복 한벌을 사면 10년 넘게 입고 다녔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대기업 총수들의 재산을 조사한다며 가택수색할 때도 금붙이 한조각 나오지 않아 조사관들이 혀를 내두른 일은 유명하다.

최명예회장은 독실한 기독교신자 답게 YMCA 등 각종 사회단체에서 봉사활동을 주도했으며 80대의 노구를 이끌고 대북(對北) ‘사랑의 쌀 보내기’ 운동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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