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대한 네루의 사랑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간디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간디는 인도를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은 수십만 개의 인도 마을과 민중이라고 생각한 반면에 네루는 그것이 근대화된 도시와 엘리트라고 보았습니다. 낙후한 농촌이 문명의 도시를 끌고 갈 것인가, 야박한 도시가 순박한 농촌을 끌고 갈 것인가…. 아무리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더라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대상을 그르칠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의 역설입니다. … 누가 내게 가장 정직한 사랑의 방법을 묻는다면 ‘함께 걸어가는 것’이며 ‘함께 핀 안개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20년 20일을 복역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그가 해외여행 중에 고국에 띄운 엽서가 ‘더불어 숲’이란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시인 고은의 말대로, 2인칭의 편지글은 우리가 자칫 잊을 뻔한 모성(母性)의 경어체를 살려내면서 세상의 여러 도그마들을 녹이는 따뜻한 화해를 일구어낸다.
지난날 그 오랜 시련 끝에 올리는, 순결한 기도 같은 글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흐르는 시간에 부여하는 어떤 ‘기품’ 같은 것은 아닐까, 싶은 그런 글들.
그는 이베리아 반도 끝,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묻는다. 콜롬버스는 왜 서쪽으로 갔는가?
본격적인 식민주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콜롬버스의 출항. ‘신대륙 발견’은 당찮은 기만이 아니던가. 신대륙이 아님은 물론이고 발견이 아닌 도착(到着)일 터. ‘콜롬버스의 달걀’도 비범한 발상의 전환 이전에, 생명 그 자체를 서슴지 않고 깨트릴 수 있는 비정한 폭력으로 다가온다. 그는 대양을 향한 콜롬버스 동상의 손 끝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의 여정(旅程)은 어쩌면, 단 한 가지 소중한 깨달음을 향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느 곳의 어떤 사람이든 그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하여 살아왔다는 사실, 모든 것은 그 땅의 최선이었고 그 세월의 최선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의 ‘최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유적지에서, 궁벽한 시골의 마을에서 최선의 결정(結晶)들이 여지없이 깨트려지는 흔적들을 목격한다. 그 땅, 그 사람들의 최선을 하시(下視)하고 서슴없이 관여하는 강자의 도도한 논리. 정치 경제적인 이해를 관철함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구조와 사람들의 심성마저 강제하는 억압의 논리.
‘매서운 한파가 우리의 무심했던 일상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 겨울은 나목(裸木)으로 서는 계절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이런 글을 적었지요.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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