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괌추락 1주기]유가족, 슬픔딛고 새삶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4분


《2백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기 801편 괌 추락 사고가 6일로 1주기를 맞는다. 대한항공은 5일 괌현지에서 희생자 위령제와 추모비 제막식을 갖기 위해 4일 오전 특별기편에 유족 3백50여명을 태우고 괌으로 출발한다.》

벌써 1년세월이 흘렀다. 지난해 8월6일 새벽 2백29명의 목숨을 앗아간 괌 대한항공기 추락 사건. 가족단위 희생자가 유난히 많았던 그날의 참사(慘死)는 이미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가지만 29명의 생존자와 혈육을 잃은 가족들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았다.

사고 당시 대한항공 괌 지점장으로 ‘피해자’이면서도 죄책감에 눈물을 삼킨 채 유가족들을 보살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박완순(朴琓淳·45)대한항공 홍보부장. 박씨는 사고 비행기에 타고 자신에게로 오던 아내 김덕실(金德實·당시 44세)씨와 아들 수진군(당시 12세)을 잃은 채 간신히 목숨을 건진 딸 주희양(17)과 단 둘이 살고 있다.

그는 1월부터 안양 ‘여성의 전화’에서 이사로 일하며 매달 정기적인 후원금을 내고 상담원을 교육시키는 등 ‘남을 돕는 일’로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아내가 생전에 헌신적으로 일했던 여성단체를 찾았다. 그곳에 가면 아내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는 아내가 남긴 ‘몫’의 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1월에는 아내가 생전에 그토록 바라던 이 단체의 정식 창립총회까지 열었다.

“이별의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아내가 떠난 뒤 모든 만남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어요. 단지 딸 아이가 아직도 엄마 얘기를 전혀 안하는 것이 걱정이지만 차츰 나아지겠지요….”

신기하(辛基夏·당시 57세)국회의원의 두 아들 영록(泳錄·25) 상록(相錄·24)씨 형제는 생전 아버지의 뜻을 좇아 법조인이 되기 위해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할머니마저 식음을 전폐하다가 사고 49일만에 세상을 떠나자 한동안 방황했었지만 떠나간 부모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올 2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영록씨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한양대 법대 대학원에 진학한 상록씨는 고시원에 파묻혀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아내와 9세, 6세된 남매, 장인 장모 등 8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한양대 의대 신경과 김희태(金熙太·35)교수.

그는 장인이 남긴 1천억원대의 재산을 모두 사회사업에 기증하겠다고 밝힌 뒤 장인의 형제들이 낸 재산상속권 소송에 휘말렸지만 1심에서 승소, 오는 20일 열리는 항소심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밖에 생존 여승무원 3명 중 손승희씨(25)는 최근 복직, 대한항공 객실훈련원 강사로 있으며 이윤지(24) 오상희(26)씨는 사고 이후 회사를 떠났다.

〈이훈·권재현·박윤철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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