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씨 출소]『90년대에 태어났다면 서태지 됐을것』

  • 입력 1998년 8월 16일 19시 01분


“이념이나 가치로서의 사회주의의 중요성은 여전히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의 내 가치관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노맹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박노해(본명 박기평·朴基平·41). 구속수감 7년5개월만에 15일 광복절 특사로 경주교도소에서 풀려난 그는 자신의 변화를 이렇게 밝혔다.

실질적인 민주주의 평등 등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를 여전히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것을 실천해 나갈 자신의 사상적 바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룩한 긍정적인 성과와 생태주의 여성주의 영성(靈性)주의가 결합된 새로운 ‘무엇’으로 바뀌었다는 것.

석방 직후 발표한 A4용지 두장 분량의 출옥인사에서 이미 “지금, 문제는 변화”라고 강조했던 그는 인터뷰 내내 변모 흔적을 드러냈다.

수감기간중 시 산문 예수 부처의 전기 등 50여권의 책 집필을 구상했으며 가장 먼저 쓰고 싶은 주제는 ‘헌법은 나의 사상’. 80년대 체제를 부정한 투쟁가였던 그는 독재 하에서 헌법의 기본정신이 무시됐을 뿐 우리 헌법이 대단히 진보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미래의 진보운동은 헌법을 실질적으로 구현해 나가는데 뿌리를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집 ‘노동의 새벽’의 얼굴없는 시인으로서의 그의 문화적 감수성도 달라졌다. “90년대 세대였다면 박노해가 아니라 서태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 그는 “신세대들의 감성은 인류사의 의미있는 ‘진화’이며 그것이 나의 문체 문장스타일, 세상을 느끼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경주〓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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