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30일 조선산업건설협회 최두선(崔斗先·최씨의 아버지)부회장 등 18명이 미군정청의 허가하에 일제가 남기고간 화약공장을 시찰하던 중 시험실 문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져 12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인천화약폭발 18명 사상, 일인(日人)의 장치폭탄으로 판명’이라는 제목으로 사건을 보도했다.
이 기사는 최부회장을 ‘함남 장진군 출신으로 고학으로써 보전(고려대 전신)을 졸업하고 농민운동과 각종 산업방면에 큰 공훈을 남긴 인물’로 소개하면서 얼굴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당시 13세의 어린 나이로 큰 충격을 받은 최씨는 진상 규명을 다짐했지만 미군정청의 비협조로 결국 미궁(迷宮)에 빠져버렸다.
최씨는 6·25때 국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적군의 포화에 부상해 불구의 몸이 된 상이용사이기도 하다.
최씨는 53년전 발생한 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것을 자신의 마지막 남은 소명으로 삼고 이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숨진 희생자 유족을 찾고 있다. 02―603―2377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