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부부, 국내 남은 전재산 수재의연금 기탁

  • 입력 1998년 8월 20일 19시 37분


“고향을 두번 등진 아버지의 마지막 재산입니다. 받아주세요.”

19일 오후 동아일보사를 찾은 김성찬씨(45·국민은행 근무)는 가슴속에서 빛바랜 통장 하나를 꺼냈다. 통장의 주인은 21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김익환(金益煥·83) 백문옥(白文玉·80)씨 부부. 지금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김씨 부부가 수재의연금으로 써달라며 3천만원을 보낸 것이다.

“부모님은 조국을 떠나기 전 사업을 하면서 번 돈 1억원을 통장에 남기셨어요. 그리고 말씀하셨죠. ‘반드시 누군가를 돕는데 쓰라’고….”

김씨 부부는 북한 신의주가 고향인 실향민. 공산당이 싫어 고향을 등졌고, 다시 독재가 싫어 이민을 결심했던 그들이었다.

“미국에서 야채상과 세탁소 등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셨죠. 그러면서 ‘먼 곳에 있다 보면 조국의 고통이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라며 모국을 그리워하곤 했어요.”

김씨의 통장에 있던 1억원은 이후 스무해가 다 되도록 소년소녀가장의 장학금과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였다. 결국 이번에도 미국에서 조국의 물난리 소식을 들은 김씨 부부는 남아있는 재산을 모두 기탁하기로 결심한 것.

“IMF에 물난리까지 겪게 된 조국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국제전화를 통해 김씨 부부에게 성금을 기탁한 사연을 물었으나 이들 노부부는 한사코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그마한 도움을 통해서라도 우리 부부가 결코 조국을 등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고만 짤막하게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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