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영화「약속」의 「빛나는 조연」 정진영

  • 입력 1998년 12월 10일 19시 19분


이렇게 말하면 억울하겠지만 그는 잘생기지도 않았고, 키도 크지 않고, 더구나 나이까지 많다. 충무로 영화판에서 ‘뜨기’에는 열악한 조건을 골고루 갖췄다. 신인 영화배우 정진영(34) 얘기다.

그러나 그는 요즘 거의 붕붕 난다. 흥행1위인 영화 ‘약속’에서 ‘빛나는 조연’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덕분에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타더니 이번에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링’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행운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었다. ‘약속’에서 꽤 비중이 큰 엄기탁 역을 맡길 배우를 못찾아 고민하던 제작진 중 한 명이 우연히 ‘초록물고기’를 보다 계란장수 역을 맡은 그를 발견하고 김유진감독에게 추천한 것. “어떻게 계란장수한테 엄기탁을 시키느냐”고 화를 내던 김감독은 오디션을 보더니 두말않고 그에게 역을 맡겼다.

배역이 확정된 뒤 “제가 운이 좋습니다”며 감사의 말을 건넨 정진영에게 돌아온 김감독의 대답. “아냐, 내가 운이 좋지. 너는 10년씩 준비한 배우잖아.”

김감독의 말처럼 정진영은 ‘준비된’ 배우다. 서울대 국문과를 나온 그는 87년 극단 한강 소속으로 파업현장을 돌며 연극을 시작했다. 92년 전교조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가 첫 출연 영화. 운동권에서 꽤 날리던 배우였지만 그는 학력과 경력이 들춰지는 것을 싫어한다.

“꼭 ‘퍼스트레이디가 된 스트립댄서’취급하는 것 같아서요. 서울대 나온 배우는 대개 지식인 역을 맡던데 난 계란장수, 깡패로 풀려 정말 다행이예요.”

이념이 중요했던 80년대에도 가장 큰 열망은 ‘내 연기를 보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는 것이었다던 정진영. 이제 보다 다양한 대중과 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 호흡을 고르는 중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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