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노네스박사 『北, 美관심 끌기위해 96년 판문점시위』

  • 입력 1998년 12월 16일 07시 24분


전 미국무부 북한 분석관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판문점에서 미군과 북한군이 접촉해 온 것과 한국군의 대북접촉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미군과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정기적으로 파티를 가졌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클린턴 미행정부가 북한과 핵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실천에 공들인 94년부터 97년까지 미국무부 북한 분석가로 일한 실무주역이다. 작년 미국무부를 떠나 아시아재단 서울사무소 대표로 일하는 그는 북한접촉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귀하는 미군과 북한군이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어왔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96년 7월 북한을 방문하던 중 판문점에 안내받아 가서 그런 현장을 보았다고 했는데….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당시 북한군 관계자가 내게 귀띔해준 것이다. 그는 ‘매주 금요일밤이면 미군과 우리 군인들이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오락실 등에서 만나 피자를 안주삼아 맥주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서울에 와 미군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이 정도는 비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군과 미군이 긴장 속에서도 이렇게 비공식적으로나마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최근 한국군과 북한군 판문점 접촉과 관련해 북한군―미군간 피자회동이 영향을 미쳤다는 외신보도는 사실을 잘못 짚은 것이다. 두 사안은 철저히 별개의 것이라고 본다.”

―96년 4월11일 한국에서 총선거가 있기 전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무력시위를 벌였었다. 귀하는 당시 미국무부 북한 분석관이었는데 그 때 미국무부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는가.

“당시 미국무부 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북한은 휴전협정을 파기하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미국에 강력히 주장하곤 할 때였다.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가 총선에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주의를 끌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군사적 움직임이 정부 여당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다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렇다면 의도가 무엇이었겠는가.

“우리는 클린턴대통령이 선거 직후 한국을 방문키로 했던 것에 주목했다. 북한은 클린턴대통령이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에 충격적인 이슈를 만들어 미국의 관심을 끌어야했다. 특히 미국과 직접 대화채널을 갖고 싶어한 군부가 그랬을 것이다.”

―김일성(金日成)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나.

“93년10월 김영남(부주석) 강석주(외교부 부상)가 배석한 자리에서 애커먼 미 하원 동아태소위원장과 김일성을 만났다. 김은 경수로개발 사실은 인정했지만 핵발전용임을 강조했다.”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해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금창리문제는 미국이 먼저 거론했다는 것이다. 문제를 부각시킨 것은 미 의회내 강경파들이다. 북한은 금창리문제가 이슈화하면서 미 의회가 확인안된 시설에 의혹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협상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북한에 협상카드를 만들어 준 결과가 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북한은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정부정책과 민간정책으로 구분해 보고 있다. 현대의 대북사업에서 알 수 있듯이 민간차원의 교류는 북한도 긍정적이다. 북한이 주목하는 것은 한국정부의 진정한 정치적 의도다. 북한은 김대통령의 유연한 대북한정책을 일면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관계국들이 햇볕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리〓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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