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올해의 인물]맨발투혼 골프여왕등극 박세리

  • 입력 1998년 12월 30일 19시 42분


98년 7월7일 미국 위스콘신주 블랙울프런GC. US여자오픈골프 플레이오프 연장 18번홀(파4).

박세리(21·아스트라)의 티샷이 페어웨이 왼쪽 워터해저드 경사진 러프에 빠졌다. 승리는 이제물건너간듯했다. 이홀에서지면만회할기회는없는것.

박세리는 물론 아버지 박준철씨의 상기된 얼굴표정이 TV화면을 가득 메웠다.

반면 한쪽에서는 티샷을 페어웨이에 안착시킨 경쟁자 추아시리폰(21·미국)이 승리를 확신하며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기적은 의외의 상황에서 일어난다던가. 박세리의 진면목이 여기서 발휘될 줄이야.

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에 들어간 박세리는 멋진 트러블샷으로 러프를 탈출했다. 실로 세계가 놀란 감동어린 명장면이었다.

하얀 발과 그을린 발목.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었다.

추아시리폰과 동타를 이룬 박세리는 서든데스(연장전 녹아웃 방식) 두번째 홀에서 천금의 우승버디를 낚으며 극적인 역전우승 드라마를 연출했다.

얼마나 골프에 몸을 던졌으면 발과 발목의 색깔이 그처럼 확연히 드러날 수 있을까.

‘92홀 사투’에서 보여준 불굴의 투혼. IMF한파로 풀죽은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동아일보가 98년을 빛낸 무수한 인물 중 박세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너무나 과분한 영광입니다. 모든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데뷔 첫해 다승 공동1위(4승), 상금랭킹 2위(87만2천달러).

30일 AP통신은 전종목 통틀어 올 최고의 여자선수로 박세리를 선정했다. 타임과 CNN 등 다른 매체도 예외는 없었다.

이는 모두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

지난달 금의환향했지만 무리한 국내 체류일정으로 몸져 눕는 등 유명세도 톡톡히 물었던 그.

“성과도 컸지만 마음고생도 많이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모두 잊고 성원해주시는 국민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세리가 되겠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만큼 마음고생도 컸던 그는 지난 1년의 명암이 교차한다. 비록 허리가 좋지 않지만 영광의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 그의 요즘 각오는 더욱 칼같다.

〈안영식기자〉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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