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80주년]「33인」후손,「선친긍지」로 한평생

  • 입력 1999년 2월 28일 19시 56분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유족회’는 33인 후손들이 서로 알고 지내자며 해방 직후 만든 모임이다.

33인 민족대표의 아들과 딸은 대부분 작고해 현재 생존한 2세는 4,5명.

그 중 김행식(金行湜·75)씨는 평안북도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해방 이후 반공운동을 벌이다 구소련 시베리아에 끌려가 감옥에서 순국한 김병조(金秉祚)선생의 아들로 유족회 회장과 부회장을 6년간 맡았었다.

만해 한용운(卍海 韓龍雲)선생의 딸인 영숙(英淑·65)씨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인 심우장(深牛莊)에서 살고 있다. 외국에 체류하는 두 아들을 찾아가 손자들 재롱 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손병희(孫秉熙)선생의 외손자이자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선생의 장남인 방운용(方云鎔·81)씨 부부도 손자들을 돌보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천도교 대표 권병덕(權秉悳)선생의 손자인 권오상(權五常·52)씨는 농협 경기시흥지점에 근무하고 있다. 권씨는 “두 딸이 어렸을 때부터 독립선언문을 달달 외우고 다닌다”고 말했다.

기독교 대표 이승훈(李承薰)선생의 고손(高孫) 이기대(李基大·45)씨는 의류점을 경영하지만 최근 경제난으로 생활 형편이 어렵다.

정부는 33인 중 독립유공자로 훈장이 추서된 28명 중 27명의 후손에게 80만원 안팎의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민족대표가 해방 전 별세했으면 3세까지, 해방후 별세했으면 2세에게만 연금을 주기 때문에 넉넉한 지원이라고 보긴 어렵다.

천도교 대표 나용환(羅龍煥)선생의 아들 경덕(京德·82)씨는 “선친이 부귀와 명예를 바라고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듯이 후손도 구차한 도움을 받거나 기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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