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쉬리’로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운 강제규감독(37). 서울에서만 1백3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임권택감독의 ‘서편제’(93년)가 6년동안 흔들림 없이 지키던 한국 최고기록을 깬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주목의 대상이 됐다는 뿌듯함보다 “한국영화의 관객층이 크게 확산됐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둔다.
“그동안 완성도가 높은 다양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한국영화 시장의 폭이 넓어졌어요. ‘쉬리’의 성공을 계기로 앞으로도 주제와 소재, 기법에서 다양한 영화가 나오리라고 기대합니다.”
‘쉬리’는 그의 두번째 영화. 영화 두 편 만들고 순식간에 스타감독이 됐지만 그의 순탄치 않은 이력을 듣고 나면 ‘벼락 출세’라고 눈을 흘기기도 어렵다. 84년 영화현장에 뛰어든뒤 96년 데뷔작인 ‘은행나무 침대’를 만들기까지 10년이상 연출부 조감독 등 충무로 밑바닥 일을 해왔다.
대학(중앙대 연극영화과)때 전공은 ‘촬영’이었지만 그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게임의 법칙’ ‘장미의 나날’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강감독이 ‘쉬리’를 착상하게 된 계기는 96년 북한 식량난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부터.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남북문제를 영화적 소재로 다뤄볼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할리우드와는 다른 우리 식의 첩보액션영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썼던 시나리오에서 ‘쉬리’는 “정치적 냄새가 많이 나는 ‘완전 첩보액션 영화’였다”고. 그러다 돈과 기술력의 한계, 드라마적 재미때문에 멜로 드라마적 설정을 도입했다. 북한의 여자 저격수 이방희도 처음엔 남자로 설정했다가 영화적 재미를 위해 여자로 바꾼 캐릭터.
할리우드에 비한다면 한국영화의 제작환경이야 열악하지만 관객들로부터 “뭐, 저래”하는 평가는 듣지 말자는 오기로 꼼꼼하게 다듬고 여러 번 수정한 덕분에 액션 장면은 ‘할리우드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강감독은 “도심의 총격전이 북한 여전사 추격장면으로 바뀌는 장면이나 국가 안보국 내부의 스파이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이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가 아쉽다”며 “외국 영화제나 필름 마켓에 내보낼 필름은 그같은 단점을 보완해 출품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쉬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개인적으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대목이 있다고 했다.
“분단문제를 악용했다는 비판을 접하면 솔직히 당혹스러워요. ‘쉬리’가 북한 전체를 싸잡아 오도했다면 맹목적 반공이겠지만 적어도 그렇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강감독은 “통일문제는 늘 ‘길소뜸’처럼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느냐”며 “영화는 자유분방하다. 상업영화감독으로서 내 과제는 관객이 동의하고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쉬운’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약력
△85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91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로 91년 한국시나리오대상 수상
△94년 ‘게임의 법칙’으로 한국백상예술대상 각본상·춘사영화제 각본상 수상
△96년 ‘은행나무 침대’기획 연출. 대종상 신인감독상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수상
△97년 씨네21 영화상 신인감독상 최우수작품상 수상
△98년 ‘쉬리’ 기획 각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