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9돌 특집]동아일보 특종 그이후…

  • 입력 1999년 3월 31일 19시 16분


1920년 창간 이후 동아일보가 발굴해낸 특종보도들은 그때그때 역사와 사회의 물줄기를 바꿔나가는 역할을 해왔다.

일제하에서 동아일보는 20년 일제의 간도 독립군 토벌 보도와 독립군의 봉오동 전투승리 보도 등 활발한 독립운동 보도로 조선인들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 31년 동아일보가 전개한 ‘브나로드운동’ 역시 일제하 조선민중을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계몽운동으로 그 이후 민중운동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보도의 영향력은 해방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는 67년 기자협회에 의해 제정된 한국기자상의 수상내용에서도 잘 나타난다. 68년 제2회 한국기자상을 받은 ‘김종필(金鍾泌)씨 탈당’보도는 당시 공화당 정권내의 권력투쟁을 공개하는 동시에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3선개헌 의도를 암시하는 보도였다.

86년 보도된 ‘재산세파동’ 역시 정부의 잘못된 과세정책을 밝혀내고 시정조치를 이끌어낸 특종기사였다. 정부가 건물분 재산세에 대해 잘못된 누진율을 적용해 재산세를 대폭 인상했다는 이 보도로 정부는 당초 방침을 백지화했다.

87년 5월 서울대생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 및 축소조작은폐에 대한 집중추적보도는 해방 이후 한국언론사에서 가장 파장이 컸던 특종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보도는 결국 5공화국 군사정부의 기반을 흔드는 계기가 됐으며 6·10민중항쟁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91년 노태우(盧泰愚) 정부하에서 무분별하게 추진된 주택2백만호 건설의 각종 부조리와 문제점을 밝혀낸 ‘신도시아파트 부실시공’보도는 대단위 아파트의 시공과정을 전면 재검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보도로 바닷모래와 불량 레미콘을 사용한 아파트 건설이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으며 결국 정부 주택정책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93년 ‘김영삼대통령 첫 조각검증’ 보도는 고위공직자의 도덕적 자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한 특종이었다.

특히 전직대통령의 구속이라는 ‘사건’을 이끌어낸 95년 ‘노태우씨 비자금파문 최초보도’는 총칼에 의해 권력을 잡은 군부출신 대통령의 부도덕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했다. 이 보도는 또 대통령의 청렴과 도덕성에 대해 전국민적인 관심을 드높이게 했음은 물론이다.

동아일보는 편집부문에서도 ‘정확한 뉴스평가와 미려정연한 레이아웃’ 및 ‘체육면 가로짜기’ 등으로 네차례에 걸쳐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특히 가로짜기 편집은 오늘날 거의 모든 신문이 채택하고 있는 가로짜기의 시초가 된, 언론사에 남을 ‘시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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