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9돌]「동아꿈나무」28년, 내년부터 장학사업

  • 입력 1999년 3월 31일 19시 16분


‘어린이에게 꿈과 용기를.’

각계 각층의 독지가들이 보내온 ‘거룩한 뜻’을 모아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동아일보사가 가꾸고 있는 ‘동아꿈나무’가 심어진 지 올해로 28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수많은 독지가들이 동아꿈나무재단에 맡겨온 성금은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현재 40억3천2백57만5천5백98원으로 불어났다.

동아꿈나무재단에 처음 성금을 기탁한 독지가는 71년 3월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농장을 경영하던 현암 오달곤(玄岩 吳達坤)선생. 오씨는 당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를 찾아와 평생 궂은 일을 하며 모은 재산의 일부인 1백만원을 장학사업을 위해 써 달라고 내놓았다.

당시 대학졸업자의 초봉이 2만∼3만원이었던 점에 비춰볼 때 오씨가 기탁한 장학금은 상당한 거액이었다. 오씨는 장학금을 기탁하면서 “동아일보 창간 1백주년이 되는 2020년부터 가난한 영재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오씨는 8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1천2백만원의 장학금을 더 맡겨왔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외아들 운봉(雲峰)씨가 두차례에 걸쳐 5백만원을 보내왔다. 오씨 부자가 기탁한 장학금은 이자가 쌓여 현재 3억5천여만원으로 불어났다.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오달곤씨의 사연을 본 오광수(吳光洙·78년 작고)씨는 74년부터 77년까지 4차례에 걸쳐 1천7백만원을 보내왔다. 오광수씨가 기탁한 장학금은 자신이 살던 집을 팔아 마련한 것이어서 더욱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77년에는 의사 오창흔(吳昶昕·89년 작고)씨가 청각 장애를 가진 여섯째딸이 20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내 딸과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평생 모은 재산 3억9천7백만원(주식액면가 5억7백만원)을 기탁했다.

오씨가 보낸 성금은 2000년 4월1일부터 장애학생 및 불우학생 지원, 청소년 선도, 문예창작 진흥 등 4개 분야에 걸쳐 쓰일 예정. 동아꿈나무재단은 내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현재 별도의 위원회를 조직하고 다양한 사업을 검토중이다.

85년 5월까지 15명의 독지가가 장학금을 보내오자 동아일보사는 75년 광고탄압을 받을 때 국민이 모아준 성금 3억원 등 5억원과 권희종(權熙宗)씨가 희사한 토지 7천4백평(당시 감정가 23억원 가량)을 기본재산으로 재단법인 동아꿈나무재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동아꿈나무재단에 장학금을 기탁한 독지가는 단체를 포함해 1백89명에 달한다. 10회 이상 계속 장학금을 맡겨온 사람만 해도 10명이나 되며 8명은 익명으로 성금을 냈다.

이 가운데 김윤철(金潤哲·57·서울 관악구 복지후원회장)씨는 90년부터 매달 1백만∼2백50만원씩 82차례에 걸쳐 장학금을 보내와 최다기탁자로 기록됐다.

동아꿈나무재단은 지난해 오달곤씨의 일생을 담은 전기를 발간한 데 이어 오창흔씨가 독학으로 의사가 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게 되기까지의 사연과 부모의 뜻을 받들어 장학금을 낸 기탁자의 ‘그 거룩한 뜻’을 담은 책을 두번째로 펴낼 예정이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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