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파이어니어]WTO법률자문관·국제변호사 김현종씨

  • 입력 1999년 4월 6일 19시 22분


최근 외교통상부 무역분쟁 담당 부서는 경사 분위기다.

외교통상부 통상분야 고문역을 맡고 있는 김현종(金鉉宗·40)변호사가 지난달 30일 세계무역기구(WTO)사무국 분쟁해결 상소기구의 법률 자문관으로 최종 선발됐기 때문.

김변호사는 인터뷰와 국제 통상법, 영어논문, 심지어 자문관으로서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한 심리테스트까지 치르는 까다로운 시험에서 세계 각국의 1백40여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WTO 법률자문관으로 선발됐다.

김변호사는 무역분쟁의 1심 판정 내용을 검토한 뒤 의견을 붙여 상소재판부에 제출하고 재판부의 결정이 내려지면 최종 판결문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우리나라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재판연구관(Legal Advisor)에 해당하는 셈이다.

특히 김변호사가 그동안 단순한 ‘고문변호사’가 아니라 미국 유럽과의 무역분쟁에서 ‘최전방 소총수’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외교부의 기대는 크다.

김변호사는 95년부터 매년 10여차례 이상 WTO본부와 무역분쟁 재판정이 있는 스위스 제네바를 오가며 성능좋은 총(상대방을 제압할 논리)과 풍부한 실탄(논리를 입증할 데이터베이스)을 들고 무역전쟁의 일선에서 상대국가와 치열한 교전을 벌여 왔다.

‘미국 상무부의 한국 컬러TV에 대한 덤핑관세 부과’ ‘농산물 수입통관절차에 대한 미국의 제소’ ‘소주와 위스키의 주세(酒稅)불평등에 대한 제소’ 등이 그가 최근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굵직한 분쟁들.

김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우길 수 있는 꼬투리가 있으면 악착같이 우기고 도저히 안되는 것은 선선히 물러선다’는 협상원칙을 갖고 있다.어차피 풀어야 할 것은 적극적으로 풀어 폐쇄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겨볼만한 것, 당연히 우겨야하는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버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한 논리와 이 논리를 뒷받침할 광범위한 데이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국과의 농산물 수입규제 철폐 협상과정에서 ‘파리’논쟁이 있었다. 논쟁 대상은 과거 캘리포니아산 과일에서 종종 발견되곤 했던 ‘맷 플라이’라는 파리의 일종에 대한 검역. 이 파리가 국내에 유입될 경우 국내 과수농가는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10년 내 캘리포니아주에서 이 파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검역 대상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김교수는 각종 자료를 뒤졌다. 마침내 그는 미국 LA타임스 기사를 찾아냈다. 미국의 요구가 있기 2주 전에 ‘맷 플라이’가 캘리포니아주에서 다시 발견됐다는 기사였다. 미국측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변호사는 초등학교 3,4학년을 제외하고는 외교관인 아버지(김병연 전 우루과이 및 노르웨이 대사)를 따라 외국에서 생활했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에서 국제상거래와 통상법을 공부해 뉴욕주변호사 자격을 딴 뒤 잠시 미국 로펌에 근무하다가 89년 불쑥 귀국했다.

김변호사는 “성장기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지만 한번도 한국인임을 잊어본 적이 없다”며 “언젠가는 내가 배운 법률지식과 경험을 한국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생활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그는 95년초 무작정 외교부 통상기구과를 찾아가 통상 분야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자청했다. 황당하기까지 한 제안이었지만 그의 경력과 능력을 알게 된 외교부는 두말없이 그를 고문변호사로 앉혔다.

김변호사는 “무엇에 홀린 것 같이 그저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 무작정 쳐들어갔다”며 껄껄 웃었다.

김변호사는 이달말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해 5월초 정식으로 부임한다. 일단 2년간 계약직으로 일한 뒤 특별한 흠이 없으면 본인이 원해서 그만둘 때까지 계속 일하게 된다. 연봉은 13만스위스프랑(약 1억2천여만원).

잘나가는 국제변호사인 그에게 억대의 연봉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계 무역분쟁 기구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것과 이를 통해 자신을 낳고 길러준 조국의 국제적 통상 이익보호에 적잖은 힘을 보탤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프로필

△59년 서울에서 2남1녀중 장남으로 출생

△81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국제정치학 학사, 82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취득

△85년 컬럼비아대 법과대학원에서 국제 상거래와 통상법을 공부해 뉴욕주 변호사자격을 땄으며 미국 ‘스카텐 아르프스’ 법률회사에서 근무

△89년 귀국해 로펌인 ‘김 신 & 유’ 변호사사무실에서 활동

△93년 통상분야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월급이 3분의 1이상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 홍익대 교수로 부임

△95년 5월부터 외교통상부 고문변호사로 일하면서 제일국제법률사무소에서도 근무

△E메일주소 hyunckim@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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