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빅딜]정재계 인사들의 엇갈린 희비

  • 입력 1999년 5월 2일 20시 09분


구조조정과 빅딜은 작년부터 우리 재계를 뒤흔들고 있는 도도한 물줄기다. 그 격류속에서 관계당국 또는 재벌그룹 인사들의 명암이 엇갈렸다. 물줄기의 주역이 돼 각광을 받거나 ‘과실’을 챙긴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격랑에 밀려 ‘상처’를 입은 이들도 있다.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구조조정의 총사령관을 맡아 국내외에서 최고의 ‘해결사’로 평가받는 인물이 됐다. 79년 씁쓸히 공직을 떠난 이후 ‘낭인(浪人·자신의 표현)’생활을 하다 복귀한 이위원장은 난마처럼 얽힌 구조조정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역량을 발휘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는 그를 ‘올해의 구조조정기관장’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김우중(金宇中)회장은 영욕을 한꺼번에 경험했다. 격변기 재계의 ‘주장(主將)’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룹을 살리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조선을 매물로 내놔야 하는 비운을 겪었다.

강봉균(康奉均)대통령경제수석은 빅딜이 난항에 빠질 때마다 ‘바람잡이’로 나섰다. 정부와 재계간 ‘조정자’ 역할을 잘 해냈다는 평가다.

정몽구(鄭夢九)현대회장은 그룹이 재편되는 와중에 자동차 부문을 인수함으로써 실질적인 장자로서의 위상을 회복했다. 정회장의 오른팔인 이계안(李啓安)사장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40대 사장 신화를 일구더니 자동차 대표이사로 ‘2인자’ 자리를 굳혔다. 반면 이 와중에서 정세영(鄭世永)명예회장은 30년간 분신처럼 키워왔던 현대자동차를 내놓고 떠나야 했다.

삼성은 자동차 부문 철수로 이건희(李健熙)회장의 체면이 적잖게 깎였다. 이회장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 ‘신경영’으로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것과는 달리 내내 침묵을 지켰다. 특히 삼성이 90년대들어 새로 시작했던 자동차와 유통 사업을 모두 포기함으로써 그의 리더십을 놓고 많은 말들이 오갔다.

강유식 LG구조조정본부사장은 반도체 빅딜 등 그룹이 어려운 시기에 새로운 ‘조타수’로 등장, 침체한 그룹 분위기를 추스르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략을 짜내고 있다.

숨가쁘게 전개된 재벌개혁 과정에서 ‘창과 방패’ 역할을 맡은 소장파 두사람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서근우(徐槿宇) 금감위 구조개혁기획단심의관은 작년 39세의 나이에 혜성같이 나타나 재벌 구조조정의 실무 주역을 맡았다. “재벌개혁은 관료 출신에 맡길 수 없다”는 이헌재위원장에 의해 발탁된 그는 재벌개혁을 철저히 밀어붙여 많은 재계 임원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재벌개혁과 관련한 TV토론이 열릴 때면 서심의관 반대편에는 으레 공병호(孔柄淏)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앉아 있었다. 올해 39세인 그는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로 무장하고 재계의 방어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구조조정 과정의 최대 ‘피해자’는 아무래도 퇴출 총수들. 박용학(朴龍學·대농) 최원석(崔元碩·동아) 박건배(朴健培·해태)회장 등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야 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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