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함께 한 이순자(李順子)여사도 얘기 중간중간에 끼어들어 “우리는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화장실 청소를 직접했다”는 등 세세한 부분을 거들어 설명했다. 이에 전전대통령은 “화장실 청소는 이 양반(이여사)이 한 게 아니라 내가 했다”고 받아넘기는 등 시종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이어갔다.
전전대통령은 정치재개여부에 대해 “절대로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그는 동서화합 남북문제 등과 관련해 역할을 맡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 다음은 이날 대화 요지.
★정치재개여부★
대통령까지 한 마당에 다 늙어서 뭣하러 황토판에 들어가느냐. 이따금 나를 찾아와서 도와달라는 사람도 있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친한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면 막을 이유는 없지만 나는 끼어들지 않는다.(이여사, “우리 보고 김대중대통령보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출마하라는 사람도 있더라. 그러나 우리는 하라고 1백8배를 해도 안한다.”)
★향후 희망★
남북통일 차원에서 남한의 대표역을 하라면 그건 생각해볼 일이다. 정부가 허락하고 북한이 받아준다면 북한의 금강산이고 묘향산이고 백두산이고 이곳저곳을 자유스럽게 다니면서 그곳 주민들을 만나고 싶다. (이여사, “전에 김일성으로부터 정식 초청장을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그게 아직 유효하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보낸 초청장인데 김정일비서도 인정하지 않을까.”) 그러나 금강산 관광같이 제한된 방북은 안한다.
★고 박정희대통령 등과의 인연★
박대통령과는 30경비단장 시절부터 인연이 있다. 내가 보안사령관 때 시해사건이 일어났는데 김재규전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을 시해할만큼 담대한 위인도 못된다. 그런데도 사건을 일으킨 것은 뭔가 믿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카터미국대통령의 방한을 전후해 뉴욕타임스 신문에는 “한국은 박대통령이 없어야 안보도 경제도 발전한다”는 기사가 났다고 한다. 어쨌든 당시 한국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김재규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자기가 해야 나라를 구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남북정상회담 비화★
83년 9월에 수해가 났다. 그때 북한이 남한에 구호물자를 제공하겠다고 품목과 수량까지 구체적으로 제안해 왔다. 전에는 그런 제의가 오면 서로 거부하는 게 관례였는데 아마 우리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외로 물자를 받겠다고 했더니 북한은 중국 일본에서 시멘트를 사와 북한 것과 섞어 새로 포장하는 등 난리가 났다. 그런 소동을 치른 뒤 김일성이 “전두환이란 젊은 친구가 참 연구대상이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면서 허담을 보냈다. 장세동(張世東)안기부장과 박철언(朴哲彦)안기부장보좌관이 북한에 다니고 하면서 실무교섭이 시작됐다. 그런데 저쪽 실무자들이 올림픽 공동개최 문제를 끼워 넣었다. 그것도 평양 서울올림픽을 하자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가 정상회담을 그만두라고 했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거부한 사람은 내가 최초다. 뒤에 생각해보니 올림픽 얘기를 했더라도 별 문제가 아닌데 그냥 받아서 정상회담을 할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퇴임후 심경★
단임 약속을 지키고 퇴임하고 보니까 시시콜콜 과거를 들추는데…. 내가 청와대에서 2백50만원짜리 비누를 썼다는(이여사, 2백만원짜리라고 정정) 보도도 나왔다. 언론도 문제지만 더 나쁜 것은 청와대다. 그 보도가 나오게 된 경위가 청남대 화장실에 비누가 있는데 그게 2백만원짜리라고 누가 흘렸다는 것이다. 그 화장실은 노태우대통령부처만 쓰는 것이다. 청소하는 사람이 말했을 수도 있지만….
★과거비리 청산★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니까 박대통령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상징적인 조치만 했다. 어쨌든 박대통령이 없는 마당에 누군가는 대표 인물이 필요했는데 당시 지금 김종필(金鍾泌)총리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 더구나 김총리는 군(郡) 전체 규모와 맞먹는 크기의 농장도 있고 제주도에도 땅이 엄청났다. 문제가 많았지만 최소한의 부분만 사회에 환수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조용히 일처리를 하니까 경제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비리가 많다고 떠들면 경제가 되겠느냐. 그런데 김영삼전대통령은 취임해서 하루 한건 식으로 과거 비리를 터뜨리고 하니까 경제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 나라에 외국사람이 투자를 하겠느냐.
〈윤승모기자〉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