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 무용제전인 ‘브노아 드 라 당스’여성무용가상을 수상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수진(32)은 기자와의 국제전화에서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브노아 드 라 당스’상은 92년 시작돼 매년 그해 가장 뛰어난 활동을 펼친 무용수 안무가 무용음악가 등을 시상하는 제전. ‘무용의 오스카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를 인정받아왔다.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곧 98년 세계최고의 활약을 보인 여성무용가임을 공인받은 것.
강수진은 지난해 슈투트가르트에서 공연된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주인공 마르그리트의 가련한 성격을 깊이있게 표현한 점을 인정받아 이 상을 받았다. 그는 7월에 열린 이 발레단 뉴욕공연에서도 ‘오네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두 주역을 맡아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클래식 발레보다는 신작발레의 주인공을 창조해내는 작업에 더 흥미를 느낍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현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어 맘에 듭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이 발레단 수석무용수 역할에 계속 전념할 생각이라는 그는 발레단의 전 예술감독 마르시아 하이데의 애제자. ‘슈투트가르트 차이퉁’ 등 독일 신문들은 그를 차기 예술감독으로 꼽고 있다.
“장점요? 내면연기로 주인공의 성격을 부각시키는데 자신이 있어요. 약점을 꼽자면 ‘지젤’ 등 고전발레 주인공을 연기할 때 스스로 만족감이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세계 평론가들도 강수진의 최대 강점으로 ‘내면적 섬세함’을 든다.
무용평론가 박용구. “강수진이 연기하는 줄리엣은 어린 처녀의 수줍은 성격을 먼 객석에까지 분명한 이미지로 전달한다. 또 그가 연기하는 에스메랄다(‘노틀담의 꼽추’주역)는 집시여인의 마력을 최대한 드러낸다.”
강수진은 선화예중 재학 중이던 15살 때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장인 마리카 베소브라소바에게 발탁돼 이 학교에 유학하면서 세계 발레주역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강훈련을 견뎌낸 그는 졸업무렵인 85년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1위에 올랐다. 이듬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 7년 동안 무명의 세월을 견뎌낸 뒤 93년 ‘로미오와 줄리엣’주역을 따냈다. 그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이 발레단의 주요 공연 작품에서 프리마 발레리나로 위치를 굳혔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위상 높아진 한국 무용계-유지연 배주윤 강예나등 유명무용단서 맹활약▼
한국 무용의 위상이 90년대 이후 크게 높아지고 있다.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소식이 전해지는 한편 세계적 무용단에 진출해 활약하는 무용수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
현재 세계 ‘톱 클래스’로 꼽히는 무용단은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볼쇼이발레단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등 10곳. 무용단마다 6∼10명의 주역급 무용수가 있다.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이므로 일찌감치 ‘세계 톱 10’을 인정받은 셈.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인 무용수들이 해외 무용단 단원으로 여럿 진출했다.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유지연, 볼쇼이발레단 배주윤,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강예나 등 3명이 10대 발레단 단원으로 활동중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주역급에 오르지 못한 상태. 단 10대 무용단 이외의 단체에서는 미국 클리블랜드 발레단의 최강석, 애틀랜타 발레단의 김혜영 등이 주역급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인정해 세계 무용계의 ‘대접’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김혜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이 룩셈부르크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등 세계 유수 콩쿠르의 심사도 늘어나는 추세. ‘댄스 매거진’ ‘발레 인터내셔널’ 등 전문 무용지들도 최근 손인영 김매자씨 등 한국 무용가들의 활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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