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특히 양김진영에서는 “야당한 사람치고 박의정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까지 말했다.
평북 신의주 출신인 박씨는 이날 공항에서 뿌린 유인물을 통해 “K대 정외과를 졸업했고 전국대학생 남북통일촉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4·19 당시 국회 앞에서 격려연설을 한 직후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 장면(張勉)총리 민정비서를 지냈고 5·16 후에는 박정희(朴正熙)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에게 민정이양을 촉구하며 직접 면담까지 했으며 한일(韓日)회담 반대투쟁을 벌여 투옥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이후 주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주변을 맴돌았다는게 정치권의 기억이다. 국민회의 중진의원은 “물론 양김 진영 사람들을 모두 잘 알고 지냈지만 이북출신이라 DJ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고 전했다.
74년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자영업으로 성공한 뒤에도 끊임없이 정치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76년 재미(在美)한국민주정부수립촉진위원회를 만들고 87년 대선을 앞두고는 야당후보 단일화운동에도 참여했다.
90년 민자당에 입당했으나 전국구 명단에서 빠지자 94년 민주당이 주최한 서울역 집회에서 미국대표로 ‘김영삼정권퇴진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는 등 김영삼 전대통령을 비난해왔다.
박씨를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91년 3당 합당시 전국구 의원직을 얻으려고 김 전대통령에게 자주 인사해 김 전대통령도 그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