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야쿠자를 살해한 혐의로 31년간 일본 감옥에서 복역해 온 재일교포 김희로(金嬉老·71)씨가 풀려나기까지 한 무명 이발사의 ‘작은 전쟁’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화제다.
주인공은 서울 강북구 미아5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며 30년 가까이 ‘김희로씨 석방후원회’를 이끌어 온 이재현(李在鉉·53)씨.
언론보도를 통해 사건소식을 접한 이씨가 후원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70년 무렵. 당시 이 사건과 함께 재일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상이 적나라하게 알려지면서 김씨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인들이 격분해 항의집회와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몇년 뒤 김씨의 형량이 무기수로 확정되면서 그의 존재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잊혀지기 시작했다. 후원회도 하나둘씩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75년 어쩔 수 없이 회장을 맡게 된 이씨는 그 뒤 홀로 김씨의 석방탄원운동을 벌이며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변변한 후원자 한 명 없이 후원회를 혼자 꾸려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10평도 안되는 허름한 이발소의 문을 걸어잠그고 석방탄원에 필요한 서명을 받기 위해 대학교 등지로 돌아다닌 날이 부지기수였다.
탄원서를 내기 위해 일본에 가야 할 때도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야 했던 이씨는 비행기표를 살 돈이 없어 서명을 우편으로 부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전국을 돌며 이씨가 받은 서명만도 지금까지 35만여명분. 이 중에는 김대중대통령과 김수환추기경 등도 포함돼 있으며 96년에는 재일동포 수백명이 서명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씨는 “그동안 혼자 후원회를 이끌어 오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막상 석방소식을 접하니 그래도 작은 보람을 느낀다”면서 “김씨의 석방은 단순히 한 무기수의 석방이 아니라 민족차별에 저항해 온 재일한국인의 소중한 승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