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로씨-박삼중스님 대화록]"조국서 사는 것은 내운명"

  • 입력 1999년 8월 29일 19시 32분


일본인 야쿠자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다음달 7일 31년만에 풀려나는 재일교포 김희로(金嬉老·71)씨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씨는 지난해 11월 어머니 박득숙(朴得淑)씨가 숨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감옥에서 일본열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 옥사하겠다”고 말해왔다.그러나 그는 일본 법무성으로 부터 가석방 사실을 통보받은 23일 “조국에 가면 어머니의 혼을 달래드리기 위해 혼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도쿄(東京)의 후추(府中)형무소 특별면회실에서 자신의 석방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박삼중(朴三中)스님과 만나 최근의 심경을 털어놓았다.다음은 김씨와 박스님의 대화내용. 통역을 맡았던 최복철(崔福喆·49)씨가 기록한 것이다.

▽박〓(김씨의) 큰 동생의 협조로 가케가와 조후쿠지(長福寺)에 안치된 (김씨의)어머니 유골을 옮길 수 있었다. 주지의 도움도 컸다.

▽김〓내 동생들은 나의 귀국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조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비쳤다. 어머니가 귀국 못하고 일본에서 돌아가신 이유는 따로 있다. 기자회견시 발표하겠다.

▽박〓조국에 도착하는 당일 부산의 자비사에서 어머니 영정에 참배한 뒤 기자회견을 갖도록 하겠다.

▽김〓신세진 분들에게 30통의 엽서를 준비해 놨다. 사건 당시 후지미야여관 벽에 써 놓은 글이 있는데 후세에 남기기 위한 유서였다. 귀국후 스님과 의논해 내용을 공개하겠다.

▽박〓지금 심정은….

▽김〓74년 전에 어머니가 부산에서 혼자 보따리 하나만 갖고 일본으로 건너와 4일 동안 걸어서 도쿄로 왔다. 그후 아버지를 만났다. 나는 71년이 지난 지금 비행기를 타고 조국에 처음으로 가게 됐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조국의 모습은 어떨지…. 어머니와 함께 귀국할 수 없는 것이 참으로 분하다.

▽박〓한국생활에 자신이 있는지….

▽김〓싫고 좋고를 떠나 나의 조국, 동포가 있는 곳에 가서 사는 것은 나의 운명이다.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겠다. 사회생활에 익숙해질 때까지 무리하지 않겠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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