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村賞 영광의 얼굴]학술부문 이상수박사

  • 입력 1999년 9월 19일 20시 37분


《제13회 인촌상 수상자가 선정됐다. 학술과 교육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영광의 두 얼굴. 이번 심사는 부문별로 3명의 전문가들이 참가, 3개월에 걸쳐 공정하고 신중하게 진행됐다. 학술 교육부문 수상자들의 삶과 공적사항, 소감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인촌상의 발자취와 그동안의 수상자들의 면모도 함께 살펴보고 사회와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남을 위해 봉사해온 그들의 삶을 통해 인촌상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학술부문 수상 이상수박사▼

“인촌상은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논문 한편 잘 써서 받는 상보다 훨씬 의미가 깊기 때문에 무척 기쁩니다.”

학술부문 수상자 이상수(李相洙·74)박사는 “70년대초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설립할 때는 국내에 박사가 모자라 해외 과학자들을 끌어오려고 애썼지만 지금은 KAIST 출신 박사들이 산업계와 학계에 두루 퍼져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두차례나 KAIST 원장을 역임한 그는 “두번째가 힘들었다”고 말한다. “대덕연구단지에 캠퍼스는 건설했지만 서울을 떠나지 않으려는 교수들이 많아 이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것. ‘KAIST의 대부’인 그가 앞장서자 대세가 기울었고 지금은 당시 대덕으로 옮기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정년퇴임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그는 일주일에 사흘은 KAIST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낸다. ‘레이저광학’ 강의도 하고 대학원생 실험도 지도한다. 지난달에는 세계광학회의 부회장으로서 서울에서 ‘레이저 및 전자광학 태평양지역 국제회의’를 주관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공부할 때는 돈이 없어서 홍콩에서 배타고 한달 걸려 영국에 유학갈 정도로 고생이 많았어요. 요즘은 학문수준도 높아졌고 경제사정도 좋아졌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늘 도산 안창호선생의 ‘무실역행(務實力行)’과 조선시대 실학파들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합니다.”

〈김학진기자〉jeankim@donga.com

▼이상수박사 공적 사항▼

60년부터 원자력연구소 물리연구실장 소장 원자력청장 등을 역임하면서 고리원전1호를 도입하는 등 원자력 이용에 기여했다.

KAIST 초대원장과 6대 원장을 맡아 고급 과학기술두뇌 양성기관으로 성장시켰다. 레이저개발과 광학이론을 발전시켜 이 분야 선구자로 손꼽힌다.

그가 개발한 광분해 옥소레이저는 독일 러시아에 이은 큰 성과였고 고출력 이산화탄소레이저도 창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50명의 박사와 100여명의 석사를 지도했고 23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한물리학회장 한국광학회장 등을 지냈고 제3세계 아카데미이사, 세계 광학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현재 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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