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 꿈꾼 29세 의사 심재학씨 안타까운 죽음

  • 입력 1999년 11월 10일 19시 59분


“같이 몽골에 가서 의료 선교활동을 하자고 약속해 놓고 이렇게 혼자 훌쩍 떠나면 어떻게 하니….”

9일 밤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안암병원 영안실.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심재학(沈載學·29)씨의 영정 앞에서 친구 박관태(朴瓘泰·29)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심씨는 심영섭(沈瑛燮·62)환경부차관의 차남.

대학진학을 위해 재수하던 89년 같은 입시학원에서 만난 두사람은 1년 뒤 함께 고려대 의대에 입학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두사람은 의대 기독학생회에 가입해 졸업할 때까지 매년 여름방학이면 무의촌 봉사활동을 한번도 거르지 않고 다닌 단짝이었다.

용산고 1학년 때부터 3년간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통해 안 근육병 환자들을 찾아가 돌봐 온 심씨에게 봉사활동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심씨의 친구 형윤준(邢潤準·29)씨는 “재학이는 근육병 환자들을 찾아갈 때마다 5시간이 넘도록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주고 빨래를 해주면서도 한번도 짜증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그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심씨의 장래희망은 공학도였다. 그러나 근육병 환자들을 돌보면서 심씨의 꿈은 의사로 바뀌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오지(奧地) 주민들에게 의료봉사를 통한 선교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국제교류협력단을 통해 의료봉사활동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던 심씨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나라로 몽골을 택했다.

96년 의대 졸업 직후 7년에 걸친 연애 끝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인 금정희(琴貞熙)씨와 부모도 심씨의 이같은 뜻에 흔쾌히 동의했다. 박씨도 심씨와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던 심씨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쳤다. 몸에 열이 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X레이 촬영을 한 결과 예상치도 못한 암세포가 발견됐다. 악성 임파종이었다.

다음달 심씨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MD앤더스병원에 입원해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암세포가 너무 번져 골수이식조차 못받고 귀국해야 했다. 심씨가 귀국한 뒤 고려대 안암병원 의료진은 두차례에 걸쳐 골수이식을 시도했으나 꺼져가는 심씨의 생명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 심씨는 1일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5년만이라도 더 산다면 함께 몽골에 갈 수 있을텐데 같이 못가게 될 것 같아 미안하다”며 “자네가 대신 내 꿈을 실현시켜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했다. 그로부터 나흘 후 심씨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9일 끝내 눈을 감았다.

박씨는 “재학이와 약속한 대로 레지던트 과정이 끝나면 몽골에 갈 계획”이라며 “몽골에 재학이 이름을 딴 병원을 세워 재학이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이현두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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