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총재 단독회견]"여소야대 인정해야 대화 가능"

  • 입력 2000년 4월 18일 19시 28분


민심에도 ‘오르막내리막’의 사이클이 있다던가.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신한국당은 96년 15대 총선에서 대승한 뒤 97년 대선에서 패했으나 다시 2000년 총선에서 제1당으로 치고 올라왔다. 이런 ‘사이클’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명암(明暗)과 직결된다.

이총재는 15대 총선 때는 신한국당 선대위의장으로, 97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이번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총재로 영광과 오욕(汚辱)을 한몸으로 겪고 있다.

18일 낮, 인터뷰 장소인 시내 호텔에 들어서는 이총재에게서 근래 보기 힘들었던 활기가 느껴졌다. 당 일각이 무너지는 공천파동을 겪고도 총선에서 선전, 당내 어느 누구도 쉽사리 도전할 수 없는 세력 기반을 구축했기 때문일까.

이번 ‘4·13’ 총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여권이 선거를 사흘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을 터뜨리고 후보 개인문제로 선거를 몰고 가려고 했으나 현명한 국민이 제대로 보았다. 선거 초반부터 우리는 양당구도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당도 생기고 마치 ‘1여(與) 다야(多野)’로 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국민이 양당 구도로 만들어 주었다. 이번 선거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현 정부의 국정운영을 불안하게 보는 국민이 야당에 기대를 건 것이다. 국민의 선택과 결과를 매우 무겁게 생각한다.”

―총선 결과를 여야가 서로 협력하라는 뜻으로 해석한 김대통령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야당으로서의 견제 기능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부분도 경시해선 안될 것이다. 이른바 ‘영남권 싹쓸이’ 운운하며 지역주의의 발로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지만, 달리 보면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야당으로서 견제를 제대로 해달라는 기대 심리가 들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지난 2년간 야당의 역할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반 DJ’라는 정서적 선택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왜 그런 정서가 생겼겠나. 김대통령이 지난 2년간 국정을 제대로 끌어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정서가 지배하는 정치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이 문제는 집권세력뿐만 아니라 야당의 부담과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가.

“이번 선거 결과가 단순히 지역감정의 발로라고만 본다면 야당이 이를 탈피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지역감정이라기보다는 김대중정권의 국정운영으로 인한 ‘반 DJ’ 정서라면 김대중정권이 후반기 국정운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야당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총재가 내세운 ‘상생(相生)의 정치’가 이제 여야가 공유하는 국가정치의 화두가 됐는데….

“특허신청 안 했다고 막 쓰고 있다(웃음). 98년 한나라당 총재가 되고 수락연설을 하면서 의욕적으로 제안했으나 그 이후 여권의 정치 공세 때문에 ‘상생의 정치’를 충분히 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김대통령과 여권은 이번 선거결과 만들어진 여소야대의 여건을 놔두고 대화와 타협을 할 생각을 해야지, 말로만 ‘국정 파트너’라고 하면서 여소야대의 정국구도를 깨려 한다면 상생이 아니라 대결의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김대통령에게 바라고 싶은 일은 여소야대 구도를 전제로 정국을 풀어가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자민련과의 공조를 재추진하는 것을 여소야대 구도 깨기의 일환으로 보나.

“현 정권의 국정 전반기의 자민련과의 공조라는 국정운영 행태는 이번 총선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다시 공조를 복원하는 데 대한 책임은 공조 파기를 공언한 자민련과 민주당의 몫이다. 다만 적어도 한나라당을 허물어가는 식의 정계개편은 안 된다.

―지난 2년간 김대통령의 공과(功過)를 평가한다면….

“김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는 야당 총재로서 하기는 좀 그렇고…. 공(功)이라고 하면 97년 직후의 IMF 위기 극복을 들 수 있다. IMF 초기의 국민의 공황심리 상태를 진정시킨 점은 높이 평가한다. 과(過)는 이번 총선에서 입증됐다.”

―남북정상회담에 야당으로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정한가.

“우선 북한이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내세운 세 가지 조건이 문제다. 즉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친북인사 활동 허용 등에 대해 정상회담 합의 과정에서 어떤 양해가 됐느냐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또한 회담이 실제 이루어졌을 때 우리 국민의 안전이나 정체성 문제에 대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상호주의 원칙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걱정되는 부분은 총선 사흘 전에 정상회담을 터뜨렸는데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상당부분 주고 우리가 받는 게 적더라도 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키려 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정상회담 날짜가 6월12일로 잡혀 사실상 국회 차원의 관련 논의가 불가능한 상황인데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가.

“날짜를 그때 잡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대북경협은 물론 평화체제 구축 문제도 국회의 논의나 동의 없이 가능한 게 아닌데 야당의 입장을 무시하고 그때로 잡았다.”

―정계입문 초기부터 ‘3김정치’ 청산을 주장해 그것이 바로 ‘이회창정치’의 당위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청산하자는 것인가. 또 ‘욕하다가 배운다’고 이총재나 3김이나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도 있는데….

“‘3김정치’ 청산으로 ‘이회창정치’를 대입하자는 게 아니다. 지역주의, 1인보스, 밀실야합 등 ‘3김정치’ 양태의 청산을 의미한다. 공천과정에서 ‘3김’과 다를 것 없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이번 총선결과는 우리 개혁공천의 성과를 보여줬다. 과거의 정치를 끝내는 과정을 ‘이회창 사당화’로 보는 것은 억울하다.”

―정치입문을 전후한 이총재의 이미지는 ‘법치중시’ ‘원칙주의자’ 등으로 국민에게 각인됐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투사적 이미지에 심지어 비정한 이미지까지 거론돼 뭔가 새로운 이미지 가꾸기 플랜이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일단 내게 원인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정직한 정치를 하려면 때론 편협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 데 그런 말을 안 듣고 포용력 있다는 말을 듣기 위해 타협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냐 하는 고민이 있다. 정도(正道)로 가는데는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희생해야 하는 부담도 따른다.”

<정리〓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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