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춘향’은 1947년 일본의 작곡가 다카기 도로쿠(高木東六·97)가 작곡했다. 다카기씨는 당시 한반도의 음악에 심취했던 일본인이자 가장 촉망받는 작곡가였다. 광복방을 맞은 재일동포들은 다카기씨를 찾아가 “생활비는 우리가 댈테니 ‘춘향전’을 오페라로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재일동포 1만800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2년 이상이 걸려 만든 이 작품은 48년 도쿄에서 13회, 이듬해 오사카 2회 공연을 하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일본 오페라 초창기의 대표작이라는 영예도 안았다.
그러나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 이 작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98년 12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가 계기였다. 요코하마가 결승전 도시로 결정되고 다카기씨가 요코하마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가나가와현과 요코하마시에 사는 시민들이 ‘오페라 춘향 상연 실행위원회’를 만들고 옛날처럼 조금씩 성금을 모으고 기업의 협찬을 받아 2년여만에 공연이 실현됐다. 한일 우호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춘향역은 일본인 소프라노 고시코에 마미(腰越滿美)가, 몽룡역은 바리톤 최상호(崔相虎)씨가 나눠 맡았다. 또 무용인 김매자(金梅子)씨가 안무를, 이영희(李英姬)씨가 의상을 맡는 등 양국의 스탭들이 협동정신을 발휘했다.
다카기씨는 “오래 살길 정말 잘했다”며 53년 만에 자신의 작품이 재상연되는 것을 기뻐했다. 이 공연을 본 극작가 차범석(車凡錫)씨는 “50여년 전에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고 음악도 매우 아름답다”고 말했다.
실행위원회측은 이 작품을 한국에서도 공연했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요코하마〓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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