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테크노 경영대학원의 전덕빈(全德彬·43) 교수는 ‘한국의 해리 셀던’을 꿈꾸는 과학자다. 그는 지난달 말 영국의 논문평가기관인 에메랄드(구 안바·Anbar)에 의해 경영과학 분야 최우수 논문 필자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제자인 배재대 주영진 교수와 함께 97년 발표한 논문이 96년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경영 경제학 관련 논문 4만편 중 수백편만 엄선하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논문으로 선정된 것이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 하루 입장객이 몇 명씩 될것인가’(92년), ‘여름철 새 에어컨을 사려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93년), ‘휴대전화업체들이 휴대전화 요금을 내리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불리할까’(2000년).
이런 의문에 대한 예측을 수학적 공식을 통해 제시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삼성, LG, SK텔레콤, 포항제철 등 한 번 그의 고객이 된 업체들은 다른 마케팅조사보다 그의 수학적 예측을 신뢰한다. 그러나 전 교수는 경영학자나 경제학자가 아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26세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공계 학자다. 산업공학에서 출발해 지금은 인간행동 전반을 예측하는 학문이 그의 전문 분야다.
이번에 선정된 논문도 경제 및 금융 예측에서 가장 중요한 시계열(時系列·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연속된 수치)에 내재하는 장기 추세와 단기 변동의 분리 이론을 다룬 것. 미국 유학시절 네바다사막 지하 원유광의 매장규모를 추정하기 위해 지구의 자기장 변화를 수학적 모델로 만든 예측이론을 적용, 미국 영국 등의 경제학 석학들의 경기변동 이론에서 장기추세 및 단기변동 예측의 오류를 지적하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어요. 이공계 학자가 경제학의 유명이론을 반박한 탓에 따돌림당하다 점차 이 논문을 인용하는 학자들이 늘어나면서 뒤늦게 인정받은 것이죠.”
전 교수는 이달 초 KAIST 내에 ‘포비존(ForBizon)’이란 예측전문 벤처기업까지 세웠다. 예측(Forecast)과 비즈니스(Business), 지대(Zone)란 영어 합성어로 회사명을 지어준 사람은 아내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연희(李姸姬·41) 박사다. 그와 이 박사는 2년 전 함께 미국의 유명 세계인명록에 올라 화제가 됐다. 이 박사는 고분자와 반도체 등의 표면 성질을 바꾸는 신소재 표면처리 연구의 전문가다.
전 교수는 왼쪽 두개골 뼈의 일부가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 5t트럭이 쏟아내는 건축자재더미에 깔리면서 철심이 왼쪽 뇌신경에 박히는 중상을 입은 뒤 뇌에 악영향을 줄까봐 금속 등을 씌우질 않아 머리카락과 두피로만 뇌를 보호하고 있다고. 이 박사는 전 교수가 그런 몸으로 스키와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즐긴다며 그런 ‘무모함’에 가까운 도전정신이 남편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의 꿈은 앞으로 날씨와 교통처럼 공공 분야의 예측에 도전하는 것.
“주가예측을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너무 돈벌이에 연연하게 될까봐 뒤로 미뤘습니다. 그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일에 매달려보고 싶습니다.”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