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영창악기 설립자 김재섭 회장

  • 입력 2002년 8월 18일 18시 59분


사진제공 영창악기
사진제공 영창악기
“영창악기가 되살아나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 없다.”

50여년간 피아노 제조에만 매달려온 영창악기 설립자 고 김재섭(金在燮·사진)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영창악기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자 이같이 말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영창악기는 올 6월 워크아웃 졸업에 성공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열정과 꿈이 고스란히 담긴 영창악기의 회생 소식을 들으며 17일 영면했다.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38년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피아노제작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큰형 재영씨가 당시 일본에서 피아노상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작은 형 재창씨는 피아니스트여서 김 회장에게 피아노는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김 회장은 이후 국내에 돌아와 56년 서울 명동에 영창악기제조㈜를 설립했다. ‘영창’은 큰형과 작은형의 이름 끝 글자 하나씩을 따서 지었다. 종업원 10명으로 시작했다.

김 회장의 경영철학은 ‘철저한 장인정신과 자체 상표 수출’로 요약된다. 세계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사람은 생산기술직이라 해도 모두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71년 첫 수출부터 자체 ‘영창’ 브랜드를 고집했다. 60년대 말부터 기술 제휴를 해온 일본 야마하사(社)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요청했을 때도 단호히 거절했다.

이 고집 덕분에 영창악기는 77년과 84년에 각각 동탑산업훈장과 석탑산업훈장을, 87년에 5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으며 91년 야마하를 누르고 세계 최대 피아노생산회사가 됐다. 현재 세계 피아노 생산량(연간 60만대)의 4분의 1을 차지한다.정낙원 (鄭樂源·65) 전 영창악기 사장은 “피아노를 연주하지는 못하셨지만 피아노를 만드는 데는 둘째라면 서러워하신 분이었다”며 “그분의 장인정신과 기술우선정신은 영창악기의 조직문화로 살아 있다”고 말했다.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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