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배 안 하고 산 속에서 농사짓고 장작 패며 살다보니 간 상태가 많이 좋다하데예. 이식받은 분 회복도 빠르다카이 다행 아님니꺼.”
한 달밖에 생명이 남지 않은 30대 가장에게 간의 일부를 이식해준 도우 스님은 12시간에 걸친 수술로 체중이 4㎏이나 빠졌지만 “지금은 100% 정상”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스님이 입원 중인 서울아산병원 10층 병실에 스님의 것이라곤 승복 한 벌과 천수경 한 권이 전부였다.
스님은 1997년 경남 양산 통도사로 출가한 뒤 ‘사람이 살아있을 때 다른 목숨에 줄 수 있는 게 신장, 간, 그리고 골수뿐’이라는 얘길 듣고 “이 한 목숨으로 여러 목숨 구하자는 원(願)을 세웠다”고 말했다.
스님은 99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을 물어물어 찾아가 신장질환을 앓는 20대 주부에게 신장을 떼 줬고 이번에도 간이식 경험자에게 물어 몇 시간이나 차를 타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99년처럼 그냥 소리없이 왔다 소리없이 갈라캤는데 아산병원만 간이식을 기다리는 분들이 300명이나 된다 카더라예. 병원서 제 얘기가 알려져야 지원자들이 더 나선다꼬 설득하는 통에….”
기사가 나간 뒤 50대 남자가 찾아와 장기기증의 뜻을 밝히는 소득도 있었지만 힘든 일도 있었다. 통도사 사형(師兄)들로부터 “상의 한 마디 없이…”라는 타박을 들어야 했고, 고향에서 달려온 부모님이 셋째아들이 이미 간은 물론 신장까지 기증했다는 말에 혼절하는 일까지 겪었다.
“꼭 앉아서 도를 닦아야만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지예.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일상생활이 다 수행이라 배웠심더.”
8일 퇴원을 앞둔 그의 소원은 두 가지다.
“골수기증은 40세 전에 해야 한다니 12년 안에 인연이 닿을는지 모르겠네예. 눈도 기증할라캤는데 살아 생전엔 안된다카데예. 대신 그 눈 속에 아이들 웃음이나 잔뜩 담아볼라꼬 보육원을 운영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될란지는 모르지예.”
한편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5일 퇴원한 고 목사는 자신이 장기기증에 나선 것은 하나님의 부름에 응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7월 하순경 기도를 하다가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마태복음 10장 8절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내가 과연 거저 줄 수 있을 것이 뭘까 고민하다 신장기증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밤 바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기증의사를 전했지요.”
그는 6시간에 걸친 수술 뒤 1.5㎏가량 몸무게가 빠졌다가 빠르게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며 “신장기증이 힘겹다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몸은 빠른 속도로 건강해졌지만 목회자로서 본업은 놔두고 다른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탓인지 심령이 많이 흐려져 안타까워요. 앞으로는 목회활동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95년 뒤늦게 목회자의 길에 나서 경기 용인시의 한 개척교회를 이끌고 있는 고 목사는 언젠가 회생불가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사업을 벌이고 싶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