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십대들의 쪽지 지출명세’란 목록에 이 무료 간행물을 발간하는데 드는 한달 비용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모두 2900만원의 비용 중 200여만원의 후원액을 제외하고 2700여만원이 적자로 나와 있었던 것.
1984년부터 여름과 겨울 방학 두 달을 빼고 매달 이 우편물을 전국의 학교와 학생들에게 무료 배포해온 김형모(金亨模·44·서울 은평구 응암동·사진)씨.
십대들보다 십대를 더 잘 안다는 그를 만나 도대체 왜 지출명세를 공개했으며, 매달 그 많은 적자를 어떻게 메우는지 물어봤다.
“오해의 눈길이 너무 많아서….” 김씨는 84년 발행부수 5000부에서 시작해 25만부에 이르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비용을 자신이 충당했다고 밝혔다.
부인 강금주씨(42)와의 결혼비용과 첫딸 쪽지(16)의 분유값까지 아껴가며 자금을 마련했고, 더러는 막노동을 하기도 했단다. 조금 유명해지면서는 한해 250여회에 이르는 강연 수입과 ‘이대로 어른이 된다면’ 등 27권에 이르는 저서의 수익금을 모두 쏟아부었다.
하지만 8년 전 ‘쪽지’를 함께 만들어온 부인 강씨가 2남매를 데리고 호주 시드니대로 유학을 떠나면서 주변의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내를 유학 보낸 것은 십대들에게 좀더 실질적 도움을 주자는 뜻이었어요.”
외환위기 때는 강연 수입이 줄어 전셋집을 내놓고 매트리스 하나 간신히 들어갈 옥탑방에 살며 제작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광고를 내자는 유혹도 많았지만 모두 사양했지요. 돈 때문에 순수한 뜻이 훼손되는 것을 많이 봐왔으니까요.”
그러나 몇 달간 ‘쪽지’ 제작에 참여했던 주변사람들마저 ‘형은 미쳤다’면서 떠나고 후원업체도 ‘이젠 자립할 만하지 않느냐’며 후원금을 줄이는 것을 보고 그는 딱 한번만 지출명세를 공개하기로 했다.
“도와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저 베풀 능력은 없어도 베풀겠다는 뜻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큰 일이 가능한지를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는 지금도 ‘십대들의 쪽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형편상 보내지 못하는 ‘대기자’가 6000여명에 이른다며 ‘십대들의 쪽지’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십대들의 쪽지’는 아이들의 정신적 허기를 달래주자는 뜻으로 시작했어요. 18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어떻습니까. 아이들의 정신적 공허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할 때지요.”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