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당선자가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느냐. 나는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고 말할 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가깝다. 대선 기간 중 문 변호사는 생업을 접어두고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아 부산 경남(PK)지역에서 ‘노풍(盧風)’을 재점화 하는데 한 몫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속내를 잘 아는 탓에 실제 대선 기간 중에는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전화 통화도 많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노 당선자 표현대로 ‘몽돌(동그란 돌)’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움푹 팬 ‘나무 받침대’와 같은 관계다.
문 변호사는 대학시절(경희대 법대) 학생 운동을 하다가 강제 징집돼 공수부대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그는 제대 직후인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학생데모 배후 조종을 했다는 이유로 보안사로 끌려가 투옥됐다. 같은 해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시험(22회) 합격통지서를 받는다.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은 수석이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차석으로 순위가 바뀌고 자신이 원하던 판사에는 임용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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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82년 고향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동업자 관계로 인연을 맺은 뒤 함께 부산지역의 시국사건과 노동사건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다. 88년 노 변호사가 국회의원이 돼 서울로 올라간 후에도 문 변호사는 일관되게 부산 경남지역의 시국 노동 사건을 맡았다.
87년 분신 자살한 대우조선 이석규씨 장례식 때는 노 변호사가 ‘3자 개입’으로 구속되자 문 변호사가 부산지역 변호사를 모두 동원해 변호인단을 만들기도 했다.
노풍이 가라앉던 지난해 6·13 지방선거 때 노 당선자는 그에게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문 변호사는 ‘정치에는 뜻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13일 그를 서울로 불러 만찬을 함께 하면서 민정수석비서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23일 내정 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정치를 할 생각은 없다. 당선자가 앞으로 펼치고자 하는 개혁과 새 정치와 관련해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해서 미력한 힘이지만 보태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구의 개혁도 할 것”이라며 새 정부에서 이들 기관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경남 거제(50세) △경희대 법학과 △사시 22회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 경남 민변 대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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