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단에 한 ‘산맥’을 쌓아올린 작가는 이제 그 성취감을 즐기면서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한 찻집에 앉은 작가는 그러나 형형한 눈빛으로 “작가로서의 삶에 중단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 “70대까지 10권 더 쓸 생각”
―20년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5만3000여장 분량의 원고를 32권의 책으로 낸 선생께서 이제 더 이상 쓸 게 남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운동선수가 자기 기록을 깨는 게 목표이듯 작가는 자신의 전 작품이 바로 적입니다. 그런 도전의식이 없다면 작가로서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무릇 작가란 재능에다 그런 책무감, 자기가 왜 작품을 쓰는지 그 이유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내게 그 이유가 있는 한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의지 이전에 독자들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고 있다.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새로운 대하소설을 또 써 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간간이 들어오고 있다.
“글쎄, 그건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과욕 같기도 하고. 하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내 숙명입니다. 앞으로 20세기 사회주의 몰락을 다룬 2권의 장편을 써볼 생각입니다. 또 동화와 인생론적 수필도 계획 중이고요. 70대까지 10권의 책을 더 내놓으려고 합니다.”
긴 글을 부담스러워 하는 요즘 독자들의 취향에 비춰보면 그의 대하소설이 모두 합해 1000만권 넘게 팔린 것은 세태를 뒤집는 이변이었다. 그가 ‘태백산맥’을 탈고하고 이어 ‘아리랑’과 ‘한강’을 쓰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작가들은 한결같이 만류했다고 한다.
“‘아리랑’이 100만부가 넘게 팔리는 걸 본 한 후배가 ‘참 다행’이라고 해요. 그러나 작가가 자기가 꼭 써야 할 이유가 있다면 분량이 무슨 문젠가요.”
그럼에도 외국에선 이미 흘러간 장르로 취급받는 대하소설이 한국에서 팔리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대한민국은 고도의 지식사회입니다.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 아닌가요. 그런 지적 바탕에 굴절 많았던 역사의 진실, 삶의 올곧음, 민족의 슬픔을 알고자 하는 독자들이 우리 사회엔 최소한 200만, 300만명은 있다고 봐요. 작가들이 너무 눈치 빠르게 표피적인 면만 보려고 하니 그걸 보지 못하는 거죠.”
후배 작가들로부터 “우리도 먹을 걸 남겨둬야 하지 않느냐”는 투정 섞인 불평을 듣는다는 이 작가의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은 무엇일까. 상당 부분 수도적이라고 해야 할 그의 문학에 임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듯하다.
대부분 작가들이 컴퓨터로 집필을 하는 요즘, 그래서 ‘육필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가 “앞으로도 소설만큼은 손으로 쓰겠다”고 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98년 ‘아리랑’을 쓰면서부터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시작했어요. 하루 10시간 이상씩 원고를 쓰느라 팔에 마비가 오고 하니까 출판사에서 컴퓨터를 선물해주더군요. 그러나 바로 ‘한강’을 쓰기 위한 취재에 들어가면서 컴퓨터를 배울 시간이 없었죠. 이젠 컴퓨터를 배워서 웬만한 글은 컴퓨터로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설을 컴퓨터라는 기계로 쓰는 건 뭔가 소설이라는 절대가치에 대한 훼손이 될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을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글 쓰는 것 외 사사로운 재미는 젊었을 때 이미 끊어버렸습니다.”
집필에 들어가면 그는 무인도에 들어간 것처럼 세상과 절연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혹독했던 대가가 몸 곳곳에 남아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자리에 앉아 있느라 둔부에 종기가 생기고 위궤양으로도 심한 고생을 했다. 작년에는 장이 내려앉아 탈장 수술을 받기도 했다.
“작가가 안 됐다면 아버지처럼 승려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미 문학이라는 종교의 한 승려로 보인다.
● “젊은이들, 감정과 이성 겸비”
우리 역사 속 미국의 역할에 대해 탐색해온 때문인지 작가는 ‘반미(反美)’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태백산맥’을 비롯한 작품의 내용을 들어 선생을 ‘반미주의자’로 보는 일부 시각이 있는데요.
“나를 반미주의자라고 하는 건 반쪽 시각에서 나온 편견입니다. 작년에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21세기 우리의 장래를 결정짓는 사건들이죠. 특히 최근 벌어진 일들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50년간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거대한 흐름입니다. 광복 후 미군기지에서 나온 ‘시레이션’(통조림)에 게걸이 들려 있던 때와는 다른 미국관이 필요합니다.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자는 것입니다.”
‘한강’ 취재차 미국 뉴욕 등지를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나는 반미도 친북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자주주의자다. 대한민국 국민이 제대로 대접받는 걸 추구하는 작가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작품들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40대에 접어들며 시작했던 3부작을 끝내고 보니 환갑을 맞았다. 그의 책을 읽으며 성장했던 젊은 세대도 어느덧 장년으로 진입했다.
―최근 ‘세대간 갈등’과 대결을 염려하는 일부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월드컵 때 열광적인 응원전을 TV로 보면서 젊은이들이 응원을 끝낸 뒤 쓰레기를 치우고 깨끗이 정리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젊은 세대가 감정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감정을 분출한 뒤 뒤처리하는 건 이성이 아닌가요. 축제의 감정과 이성을 겸비했다고 봅니다.”
―월드컵 응원이나 촛불시위는 현장을 중시하는 작가로서 욕심나는 현장이었을 텐데, 가보셨습니까.
“얼굴이 알려지면서 사람들 많이 모이는 데는 피하고 싶어서 현장에 나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 그런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 녹일 생각입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민중적 낙관주의’는 그의 통일에 대한 낙관으로 이어진다.
“‘태백산맥’이나 ‘한강’의 무대가 된 광복공간이나 60, 70년대는 치열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민족적 에너지가 우리 내부의 투쟁으로 소모된 측면이 있는데 앞으로는 창조적으로 쓰여야겠지요. 그러면 21세기 우리 민족의 전망은 밝습니다. 고통 속에 살아온 우리 민족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섭리에 비춰봐도 그렇고요.”
그런 미래가 아마도 그의 대하 3부작의 진정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
▼작품 등장인물 1200명…겹친이름 거의 없어▼
조정래씨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무려 1200명. 그의 소설을 풍성하게 빛내준 이들 중 몇몇 인물은 실제 그의 삶 속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다.
특히 ‘태백산맥’의 법일 스님은 승려였던 작가의 아버지를, 김범우는 작가의 외삼촌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는 “1200명 대부분의 인물들을 다 기억한다”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애착이 가는 건 어떤 이들일까.
“‘태백산맥’의 하대치와 외서댁, ‘아리랑’의 공허 스님과 필녀, ‘한강’의 일표와 강숙자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들”이라고 그는 털어 놓았다.
“하대치나 외서댁은 그 넘치는 생명력이, 공허는 스님이지만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강숙자는 인생의 가치를 공부에 두는 세태에 맞서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200명의 이름을 짓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지만 중복된 이름이 거의 없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강’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허진이라는 이름이 ‘아리랑’에 한 줄 스쳐 지나간 걸 어느 독자가 지적해줬습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조정래는…▼
△1943년 전남 승주 선암사에서 출생
△66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70년 ‘현대문학’에 단편 ‘누명’으로 등단
△83∼2002년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출간
△91년 단재문학상, 98년 노신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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