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흐름은 김대중(金大中) 정권에서 시작된 기류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개혁 2기’의 출범으로도 해석된다. 동시에 경제학계에서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간의 세력 중심 이동으로도 볼 수 있다.
이들 개혁파의 뿌리는 대학 재학시절에 형성된 가치관, 이후 학현(學峴)학파(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의 아호 ‘학현’에서 비롯된 학맥)’에서 다져진 한국경제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라는 사회참여 운동을 통해 길러진 현실 감각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경제관은 대학 재학시절인 1960년대말∼70년대초 길러졌다. 당시 상당수 학생들은 미시경제학이나 거시경제학 등 이른바 주류 경제학에 만족하지 않았다. 고도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이 부분을 채워준 게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강의하던 변형윤 교수의 ‘분배경제학’이었다. 변 교수의 애제자들은 ‘학현 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학파를 형성했다. 이들의 모임은 뒷날 서울사회경제학회와 한국경제발전학회를 태동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90년대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통해 활발한 목소리를 냈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이근식(서울시립대 교수) 김태동(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윤원배(숙명여대 교수) 이진순씨(숭실대 교수) 등 경제학자들이 경실련에 참여했다. 인수위 간사를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을 맡았었다. 이들은 금융실명제, 토지 공개념제 도입, 한국은행 독립 등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94년 출범한 참여연대는 경실련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단체. 참여연대는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사회운동의 중심단체 중 하나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소속원인 장하성, 김균 고려대 교수 등이 주도한 소액주주운동과 재벌개혁 등이 사회 현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인수위 간사를 지낸 이종오 교수도 참여연대 멤버.
이들은 김대중 정권 들어 비주류에서 주류로 ‘진입’했다. 이어 노무현 정권에서는 새로운 주류로 자리를 굳힌 셈.
DJ 정권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지낸 김태동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정책 추진 방향은 김대중 대통령의 기존 경제정책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같은 연속성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DJ 정권에서 주류로 활동한 ‘중경회’ 멤버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