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20년째 나무심기캠페인 문국현 유한킴벌리사장

  • 입력 2003년 4월 1일 19시 38분


“기업이 환경 문제에 너무 나서면 ‘왕따’가 된다고요. 아닙니다. 결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요.”

유한킴벌리의 문국현(文國現·54) 사장. 그가 시작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이 올해로 20년째를 맞았다. 거의 ‘국민’ 운동이 돼버린 나무심기 캠페인. 환경 측면에서야 좋은 일이지만 냉정하게 손익을 따져야 하는 기업인의 입장에서는 ‘계산’이 복잡해질 수 있다. 유한킴벌리가 매년 캠페인에 내는 돈은 총 매출의 0.8%. 지난해 60억원 정도가 캠페인에 들어갔으며 지난 20년 동안의 투자를 합치면 수백억원에 이른다.

“돈이야 들죠. 하지만 소비자와 직원, 그리고 다른 기업들로부터 얻는 신뢰의 점수를 생각해 보세요. 좋은 이미지가 쌓이다 보니 제품광고를 덜 해도 되고, 그 돈을 캠페인에 쓰는 겁니다.”

‘나무 박사’ ‘숲 전도사’로 불리는 문 사장이 전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쟁력 제고의 상관관계론이다. 너무나 쉽게 들리는 이 말. 그러나 20년 동안 꾸준히 실천에 옮기기는·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가온 식목철. ‘유능한 경영인’과 ‘의식 있는 환경운동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해온 한 기업인의 나무사랑 얘기를 들어보자.

# 造林은 됐지만 育林은 아직 부족

지난달 27일 기자가 찾아갔을 때 문 사장은 30일의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 준비로 바빴다. 그는 이 행사에서 300여쌍의 신혼부부에게 나무 심는 법을 가르쳐 주고 묘목을 나눠주었다.

그는 행사가 끝나면 더 바빠진다. 부부들이 심은 나무들을 뽑아 다시 심기 때문. 젊은 부부들은 생전 처음 나무를 심어보는지라 너무 얕게 심거나 묘목 뿌리에 감긴 비닐까지 통째로 심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얘기를 하던 문 사장은 “다음부터 부부들이 기분 나빠서 안 오면 어떡하지” 하며 ‘괜한 말을 했다’는 표정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건강한 숲이다. 그저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넘치는 숲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무가 다양해야 한다. 큰 키, 작은 키, 침엽수, 활엽수, 일년생, 다년생 등 다양한 수종이 어울려 있어야 숲이 숨을 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숲에 가보면 한쪽은 소나무, 다른 쪽은 전나무식으로 몰려 있다.

“숲에 여러 종류의 나무가 섞여 있어야 동물이 자랄 수 있습니다. 나무가 다양해야 곤충이 많아지고, 그래야 곤충을 잡아먹는 두꺼비와 새들이 많아집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무가 어울려 있어야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지금과 같이 비슷한 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울림은 불에 잘 탈 뿐만 아니라 진화하러 들어가기도 힘들다. 간벌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 사장은 우리나라 삼림운동을 “조림(造林)은 됐지만 육림(育林) 의식은 아직 부족한 단계”라고 평한다.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으니 수령(樹齡)이 30년 미만인 나무가 75%에 이릅니다. 나무는 평균 70∼80년을 가꿔야 대대손손 자랄 수 있습니다. 나무를 심어놓고 ‘이제 잘 자라겠지’하며 돌보지 않는 것은 나무를 심지 않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생각입니다.”

# 20년간 2000만평에 2000만그루

문 사장은 서울 토박이다. 산천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끔 산을 찾아서 맑은 공기를 쐬는 수준이었다.

그가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유한킴벌리 입사 10년후 안식년을 받아 외국에 나갔을 때였다. 안식년 제도는 없었지만 회사는 그의 별난 행동을 이해해 줬다. 최신 경영지식을 배우기 위해 외국에 나갔지만 그는 미국 위스콘신주와 호주 시드니를 돌아보면서 숲과 나무로 둘러싸인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충격을 받았다.

귀국해 기획조정실장이 된 그는 바로 숲 가꾸기 운동을 건의했다. 고 유일한(柳一韓) 창업주의 뜻에 따라 장학과 복지 사업에 주력했던 유한킴벌리로서는 커다란 방향 전환이었다.·

“83년 삼림기금 5000만원을 들고 처음 산림청에 찾아갔을 때 관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기업이 자기 돈을 들여 나라 땅에 나무를 심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만 해도 개인이나 기업이 국가 지원을 받아 자기 땅에 나무를 심는 것에 익숙해 있던 때였습니다.”

회사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지금까지 2000만평의 국유림을 가꿔왔다. 심은 나무로 치자면 2000만그루다.

“나무를 원료로 쓰는 회사라서 나무 심기에 열심인 것 아닌가요.” 문 사장이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는 “제품은 미국에서 폐지를 전량 수입해 만들고 있다”면서 “국내 목재 시장은 제지·생활용품 업체들에 원료를 공급할만한 생산량이 못 된다”고 말한다.

# ‘경영인’보다는 ‘시민운동가’

기업인을 만나서 환경 얘기만 한참 늘어놓는 것이 슬슬 미안해지기 시작할 때 마침 그가 올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에서 받은 ‘경영인 대상’ 상패가 눈에 띈다. 74년 유한킴벌리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20여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가 사장이 된 후 회사는 환경 운동에서뿐만 아니라 경영에서도 여러 혁신을 시도해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대표적인 것은 ‘일 나누기(Work Sharing)’ 프로그램. 그가 취임했을 때 회사는 노사 분규에 시달리고 있었다. 80년대 회사는 여러 차례 공장을 폐쇄하기도 했었다. 그는 고용불안을 느끼는 직원들에게 종신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3개조로 돌아가는 대다수 공장들과는 달리 유한킴벌리는 4조 근무제를 도입했다. 안양과 김천 공장은 4조 2교대, 대전 공장은 4조 3교대로 돌아간다.

인력이 남아도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근무에 투입되지 않는 직원들에게는 직무와 교양 교육을 시켜 생산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유한킴벌리 직원들은 연 250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교육은 재해율을 거의 0%대로 낮추는 효과를 낳았다.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문 사장은 올 초 한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등 동북아 킴벌리클라크 합자회사들의 경영협력체 회장으로 선출됐다.

문 사장은 일에 지치면 광릉수목원을 찾는다. 조선 세조 때부터 내려오는 이 숲은 나무가 다양해서 곤충과 동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무는 어린 화초도 좋지만 은행나무, 느티나무, 세쿼이아 등 거목에 애착을 느낀다. 1000∼2000년을 사는 이 나무들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면서 역사의 증인이 되는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경영인’과 ‘시민운동가’ 중에서 어느 타이틀이 더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경영은 길어봐야 30∼40년 하지만 사회에 있는 시간은 80년 이상 되지요.” 간접적으로 그의 대답을 들은 셈이다.

인터뷰=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文사장 추천 환경운동 3가지▼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아름다운 재단,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동북아삼림 포럼…. 문국현 사장은 10여개 환경단체의 위원장이나 이사직을 맡고 있다. 여기저기 다 참가할 수 없으므로 그는 설립 때부터 관여해온 단체에만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문 사장은 나무사랑 실천 방법은 “환경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회원이 되면 다양한 조림·육림 행사와 농촌 체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 정보는 유한킴벌리가 만든 ‘한국의 숲’ 사이트(forestkorea.org)에서 찾을 수 있다.

문 사장은 일반인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숲 가꾸기 운동 3개를 추천했다.

①평화의 숲 가꾸기

식량·에너지난으로 훼손된 북한의 산에 나무를 심는 운동. 사단법인 ‘평화의 숲 국민운동’이 주관한다. 99년 시작됐으며 지금까지 북한에 560만그루의 묘목 및 종자, 비료, 농약을 지원했다. 회비는 연 2만원.

②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시민들의 모금으로 보전 가치가 있는 자연문화 시설을 인수해 영구 보존하는 운동. 2000년 시작된 이 운동은 지난해 처음으로 인천 매화마름 군락지와 고(故)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의 서울 성북동 고택을 매입했다. 회비는 월 5000∼10만원.

③신혼부부 나무심기

유한킴벌리가 주관하며 결혼 2년 이내 신혼부부들이 참가할 수 있다. 올해 20회를 맞는 이 행사에 참가하는 부부들은 자신들의 이름표가 달린 15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행사를 통해 지금까지 6500여쌍이 15만그루를 심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문국현 사장은…▼

·1949년 서울생

·1972년 한국외국어대 영어학과 졸업

·1977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

·1974년 유한킴벌리 입사

·1995년 유한킴벌리 사장

·1997년 유엔환경계획(UNEP) 제정 '글로벌 500'상 수상

·현재 10여 환경단체 활동 중

·가족:부인과 2녀

·좌우명:'세 사람이 있으면 그 중에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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