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0명 모여 결성한 '통일예술단' 리더 지해남씨

  • 입력 2003년 4월 9일 2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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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바울빌딩 지하. 탈북자 10명이 노래방 기계를 이용해 노래연습에 열심이다. 10일 창단할 ‘통일예술단’ 기념공연을 위해서다. 이 예술단은 북한의 실상을 노래로 알릴 계획.

이 예술단의 리더인 지해남(地海南·54·여·사진)씨는 이번 예술단 창단에 남다른 감회를 갖고 있다. 북한 함흥에서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선전대원 출신이었기 때문.

20여년간 선전대원으로 활동한 그는 93년 집안에서 지인들과 ‘남한노래’인 ‘홍도야 울지마라’를 불렀다는 이유로 2년여간 참혹한 옥살이를 했다. 22시간 동안 계속되는 고된 노동과 ‘개별담화’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성추행을 견뎌야 했다. 교화원들은 그의 옷을 벗긴 채 가학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95년 9월에 교화소에서 풀려났지만 그는 아들과 남편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화소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웃들도 그를 멀리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지씨는 ‘자유와 민주’를 찾아 98년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8000위안에 인신매매를 당한 그는 전혀 모르는 중국인의 부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도망칠 기회만 엿보았다.

2000년 10월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탈북자 6명과 중국 산둥(山東)성 해안도시에서 훔친 어선을 이용해 한국으로 오려했으나 파도에 휩쓸리면서 실패했다. 중국 공안은 그를 북한 신의주로 보냈고, 그는 다시 1년 반에 걸친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의 고문으로 오른쪽 다리 아킬레스건을 크게 다쳤다.

2001년 다시 탈북한 지씨는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결국 한국에 정착했다. 그러나 고문으로 다친 다리 때문에 일하던 식당에서 쫓겨나는 등 고난은 계속됐다.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 부산에 내려갔다가 탈북자들이 중심이 된 시민단체 북한인권시민연합을 만난 것은 그에게 하나의 전기였다. 그리고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인 북한주민 인권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달 체코에서 있었던 제4회 북한 인권·난민 문제 국제회의에 참가해 중국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북한의 실상을 온몸으로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원래 특기인 노래를 통해 북한의 참상을 알리자는 마음에서 뜻맞는 9명의 탈북자와 함께 통일예술단을 만들게 됐다.

지나온 얘기를 하다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던 지씨는 “나는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며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대학이건 군부대건 가리지 않고 찾아가 노래와 함께 인권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통일예술단 창단식은 10일 오후 5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 바울빌딩 지하에서 열린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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