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의 고향도 이북이다.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리움보다 안타까움이 더하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도 벌써 30년이나 된다.
1·4후퇴 당시, 아버지는 한 일주일 후면 돌아올 생각으로 여행하듯이 고향인 원산항을 떠나셨단다. 다시는 그 땅을 밟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말이 별로 없으셨던 아버지는 수학과 회계에 능하셨다.
회사에서의 별명이 ‘걸어다니는 사전’이셨던 아버지는 수학선생님들도 어려워하던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 주위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타향에서의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뒤늦게서야 당신의 전공분야였던 회계 일을 하실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활기 차 보였고 가장 행복해 하셨던 것 같다. 우리 형제들은 외가 쪽을 닮아서인지 수학계통에는 영 재주가 없어서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 드릴 수가 없었다. 한 명이라도 아버지의 뒤를 이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께선 늘 우리에게 수학을 잘해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항상 정직함을 생활신조로 삼으셨던 아버지는 감정표현은 잘 하지 않으셨지만 자식들과 한 약속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꼭 지키셨다.
정직함과 약속을 생명처럼 지킬 것을 늘 당부하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 꿈속에서 고향 땅을 다녀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의미인지 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눈가를 훔치시던 아버지.
꿈속에서나마 가 본 고향 땅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는 그렇게 떠나셨다.
일주일 정도만 떠나 있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고향 땅을 끝내 밟아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신 아버지, 저 세상에서는 고향 땅을 훨훨 가보셨는지….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고향 땅을 밟아 볼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오려나.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