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에서 푸치니 ‘라 보엠’의 무제타 역으로 찬사를 받고 지난해 ‘메트’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에서 ‘투란도트’의 리우 역을 맡아 뉴스의 중심에 서는 등 미국과 유럽에 걸쳐 노래인생의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9월 18일 예술의 전당에서 2년 만에 내한 독창회를 갖고 때맞춰 ‘수선화’ ‘동심초’ 등 한국가곡 17곡이 담긴 독집CD(EMI)도 전 세계에 선보일 예정. 예술의 전당도 12월 31일 열리는 송년음악회를 홍씨의 무대로 계획하고 있어 올 하반기 성악팬들은 모처럼 그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에 취해볼 수 있을 듯하다.
―오랜만입니다. 최근 바쁘셨죠. 5년 전 메트로폴리탄에서 ‘라 보엠’의 ‘미미’를 노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라스칼라에서는 장난기어린 무제타 역을 맡으셨는데 그런 역도 잘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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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투란도트’의 ‘리우’ 등 ‘착한 여자’로서의 내 모습을 기억하지만 사실 모차르트 ‘여자는 다 그래’ 의 데스피나 역 등 가벼운 목소리의 역할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왔어요. 마냥 착한 역만 맡으면 단조롭죠. 색다르고 재미있는 역할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라스칼라의 팬들은 매우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까다롭기는 ‘메트’도 마찬가지죠. 다만 정열적인 이탈리아 관객이 즉각 반응을 나타내는 것뿐이죠. 평가도 좋았고 분위기가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모든 새 배역을 ‘도전’이자 ‘연구대상’으로 진지하게 접근해온 그는 요즘 일생 최대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2004년 워싱턴 내셔널오페라에서 오페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히로인인 베르디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으로 출연하는 것.
“비올레타 역은 흔히 하이콜로라투라(소리가 높고 기악적인 기교가 필요한 창법) 소프라노의 영역으로 분류되는데 저는 오히려 제 목소리가 가진 리리코(서정적) 소프라노의 면이 이 배역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비올레타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음반으로 화제를 옮겼다. 한국가곡이 실린 음반이 전 세계에 발매되는 것은 ‘문화수출’이라는 점에서 의미도 크다. 그는 음반에 담은 17곡이 ‘어릴 때부터 익혔고 언제나 뇌리에 남아있는 내 마음의 노래’라고 말했다.
“지휘와 편곡, 악단을 다 한국사람이 맡았으면 했죠. 여건상 지휘자 김덕기씨가 지휘를 맡는 정도에 그쳤지만 다행히 우리 정서를 잘 담아낸 반주가 됐어요.”
5년 전, 그가 한국에 잘 오지 않는다는 팬들의 ‘투정’을 전달하자 그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떨어져 지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라스칼라 등 유럽 오페라무대의 심장에서 높은 평가를 얻고 고국 무대에도 더욱 신경을 쏟게 된 지금은 사정이 나아진 걸까.
“아이들? 스물, 열여덟 된 딸이 있고 막내아들이 아홉 살이에요. 다행히 막내가 엄마의 가장 큰 응원자이고 엄마가 하는 일을 잘 이해해주고 자랑스러워해요.”
대학에 재학 중인 두 딸은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았지만 각각 광고학과 심리학에 흥미가 높다고 그는 말했다. 음악에도 ‘약간’의 소질을 보였지만 엄마가 일에서 받는 막중한 책임의식을 잘 알고 있는 때문인지 전공하겠다는 말은 꺼낸 적이 없다고.
변호사인 그의 남편은 뉴욕 음악계에서 ‘외조형’ 남편으로 소문이 나 있다. 홍씨는 웃음을 띠며 “외조?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팬이 되어 주는 게 가장 큰 도움이죠”라며 말을 짧게 끊었다.
헤어짐의 인사를 하기 전 그가 “아 참” 하고 말을 이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 뉴욕 시민에게 선사하는 센트럴파크의 무료 야외오페라 ‘투란도트’에서 비련의 하녀 리우 역으로 나와요. 10일인데 보고 가시면 좋을 텐데….”
지난해 메트와 바스티유에서 그가 맡은 리우 역에 ‘환상의 피아니시모’ ‘강렬한 흡인력’이라는 찬사가 쏟아진 사실을 알고 있기에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청명한 하늘 아래 링컨센터 중앙 광장에서는 청소년오케스트라가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모여들었고 관광객들은 연방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름다운 날이었다.
뉴욕=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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