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는 지난해 11월 초 ‘6·4 톈안먼사태를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해 달라’는 글을 작성, 이를 한국 정부를 통해 중국 정부에 전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우씨는 그해 말 청와대로 들어가려다 경찰에 붙들려 계획이 무산된 뒤에도 한국에 계속 머물다가 ‘중국민주화운동해외연석회의’ 한국지부장을 맡았다. 해외연석회의는 중국의 상징적인 반체제인사 웨이징성(魏京生)이 이끄는 중국 민주화운동 국제단체로 미국의 이 단체 본부에서 우씨에게 한국지부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던 것.
해외연석회의 한국지부는 지부장이었던 쉬보(徐波)씨가 한국 정부가 난민 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해 초 대만으로 망명하면서 조직이 사실상 와해된 상태.
중국 산시(陝西)성 출신인 우씨는 1968년부터 중국인민해방군에서 19년간 복무한 뒤 군 정치교리 교관과 연구원 등을 지냈다. 74년부터 중국의 독재체제에 회의를 느끼고 저술 활동을 통해 중국의 공산 독재체제를 비판해 왔다. 66년 중국 문화혁명을 비판한 30만자 분량의 ‘66운동에 대한 논평’을 비롯해 지금까지 30권가량의 책을 펴냈다는 것.
우씨는 “중국 내에서 체제 비판서적을 쓰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라며 “그러나 한국에서의 중국 민주화운동도 결코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서울 금천구의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동료 한 명과 함께 지낸다. 낮에는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일용직 노동으로 생활비를 마련한다. 그나마 요즘은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50대 중반의 그에게 건설 현장 노동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는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4일 시위 때 낭독할 중국 민주화운동 선언문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에게 전하는 공개편지를 작성했다. 그는 기자에게 한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는 손때 묻은 노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해외연석회의 한국지부로서는 4일 중국 대사관 앞에서의 시위가 공개적인 첫 활동이다. 회원은 우씨를 포함해 15명.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데 큰 제약이 있다.
우씨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중에 의한 민주화를 이룬 한국에서 활동하게 돼 기쁘다”며 “한국지부가 중국 민주화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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