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나 사업에 실패하시고 10여년 동안 경제적으로 무력한 가장이었지만 나는 한순간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버린 적이 없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것은 그 분이 한순간도 아버지로서의 자세를 흩뜨린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아버지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이가 좀 들고 나니 한 사람이 품격을 잃지 않고 한평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 같다. 더욱이 착하게,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나의 든든한 배경이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감각으로 일을 하고, 그 분이 몸소 보여주신 존중심으로 사람을 만나고, 높은 이상과 한결 같은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산다. 그러나 내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부모인가. 참을성 없는 엄마인가. 더 많은 시간을 그들을 위해 투자해야 하며 지켜봐주고 그들의 처지에 서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평생을 아버지가 주신 자신감을 밑천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부모 노릇을 아버지만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오후 9시만 넘으면 큰길까지 나와 기다리시던 모습을 떠올리니 정말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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