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포석 人事의 세계]김광웅 서울대 교수<中>

  • 입력 2003년 7월 6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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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백태웅씨가 공부하고 있던 미국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에 위치한 노트르담대를 방문해 인근 공원에서 백씨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김광웅 교수(왼쪽).-사진제공 김광웅교수
지난해 8월 백태웅씨가 공부하고 있던 미국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에 위치한 노트르담대를 방문해 인근 공원에서 백씨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김광웅 교수(왼쪽).-사진제공 김광웅교수
교수들 중에는 저녁식사는 절대 남과 어울리지 않고 집에 가서만 먹는 사람이 있다. 서울대에서도 그런 사람이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광웅(金光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런 유형의 인물에 대해 “우수한 학자일 수는 있어도 훌륭한 리더는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풀어나가느냐가 김 교수가 꼽는 ‘리더십을 갖춘 인재’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관한 평가는 상대적일 수 있어요.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말하듯 ‘좋은 만남’이면 서로에 대한 평가가 후하고, 나쁜 만남이면 서로 박하게 평가합니다. 인간관계가 나빠 결국 나쁜 평가를 남기는 사람도 있죠.”

모든 조직과 사회는 이렇게 ‘관계’로 규정돼 있다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들뢰즈의 말대로 사람은 모두 ‘관계망’ 안에서, 또는 미국 노트르담대의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교수가 정의한 대로 ‘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반평생 사람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대학 교수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내면서 김 교수가 겪어온 사람들은 모두 이런 ‘관계’ 속에서 평가돼 왔다.

그중 한 사람이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다. 박 의장은 초선의원 때인 82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에 입학했다. 주변에선 “하루 이틀 다니다 말 것”이라고 했지만 박 의장은 코스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박 의장의 이런 자세가 교수들은 물론이고 유권자나 동료 의원들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했다.

“관계(reference)와 흐름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똑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강조하고 있어요.”

하긴 대통령을 뽑을 때도 참모진이 누구인지, 그들이 대통령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 모르고 뽑는다면 그 선택은 실패로 끝나기 십상이다.

“결국 사람의 성장이란 위로부터 은혜를 받아 이뤄지는 것입니다. 나도 은사인 이한빈(李漢彬) 박동서(朴東緖) 유훈(兪焄) 김해동(金海東·작고) 선생님들로부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단순히 스승에게 갚는 것만으로는 확대재생산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위(스승)에서 받은 만큼 아래(제자들)로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관계’를 잘 풀어가는 출발점이라고 봐요.”

따라서 그에게는 ‘한번 인재는 영원한 인재’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진정한 인재는 남을 앞세우고 양보하며 부단히 희생하고 봉사하는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 교수는 박정기(朴正基) 전 한전 사장을 높이 평가했다. 그 또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에서 김 교수의 ‘학생’이었는데 ‘어느 평범한 할아버지의 이야기’ 라는 저서를 통해 “사랑할 줄 알아야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설득력 있게 설파한 바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중앙위원장을 지낸 백태웅(白泰雄·41)씨도 김 교수가 아끼는 인재다. 최근 미국 변호사가 됐고 9월부터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법대 조교수로 강의할 예정인 백씨는 92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돼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98년 특사로 풀려났다.

안경환(安京煥) 서울대 법대 교수의 소개로 백씨를 알게 된 김 교수는 백씨와의 오랜 대화를 통해 그가 과거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몽상가가 아니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진정한 진보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영원한 자유주의자’임을 발견했다. 김 교수는 미 유학 비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백씨를 위해 미 대사관까지 찾아가 그를 ‘보증’해 주기도 했다.

‘마상득천하 마상불가치천하(馬上得天下 馬上不可治天下·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라는 ‘한서’의 경구처럼 유아독존(唯我獨尊)의 닫힌 공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백씨의 자세가 아름답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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