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직속기구로 직원에 대한 직무감찰과 근무기강 점검을 담당하는 감찰실은 요직 중의 요직이라 할 수 있다.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절,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유일한 견제기관이 바로 감찰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감찰실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감찰실은 정성홍(丁聖弘) 전 경제과장 등과 관련된 비위사실을 사전에 적발했으나, 당사자 등이 정치권력을 동원해 외압을 가하는 바람에 제대로 조치하지 못하고 유야무야된 일이 있다.
전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문제를 제기했던 감찰실장 L씨는 이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가 오히려 지방으로 좌천됐다. L씨는 나중에 이 내용을 정치권으로 유출시킨 것 때문에 보안누설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감사관실은 사업과 예산집행의 적절성 여부를 점검하는 곳. 현 고영구(高泳耉) 원장이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감사관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는 하나, 실질적인 감사기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토로다. 국정원 예산처리가 워낙 복잡한 탓에, 비전문가인 감사관실 직원들로서는 내용 파악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원장 직속이거나 기조실장 산하에 있는 이들 직위가 변함없는 요직이라고 한다면 국내담당 차장 산하의 보직은 그 부침이 심한 편이다. 대공정책실(과거 102실)은 DJ 정부 때까지만 해도 국내정보 수집을 총괄하며 권력을 휘둘렀다. DJ 정권에서 비리 혐의로 물러난 김은성(金銀星) 전 차장도 대공정책실장 출신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102실은 산하에 ‘정치과’ ‘언론과’ 등을 두고 국내 정치와 언론 등에 간섭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특히 정치과가 핵심이었다. 전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5공 초 정치과는 여당인 민정당은 물론 ‘야당’인 민한당과 국민당의 창당 및 조직에 개입하는 등 사실상 국내 정치를 주물렀다. 일부 정치과 직원은 자기와 친한 사람을 ‘관할’ 정당의 전국구 후보로 밀어 당선시킨 일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삼(金泳三) 정부 이후 정치개입이 논란이 되면서 정치과는 그 이름 자체가 없어졌다. 이에 따라 대공정책실도 현저히 약화돼 갔으며 지금은 ‘협력단’으로 격하돼 조직이 크게 축소됐다.
시국사건이 빈발하던 유신과 5공 시절엔 시국사범과 대공사범을 전담하는 대공수사국도 각광 받는 부서였다. 업무가 힘들고 이따금 용공조작 시비 등에 휘말리는 등 대외 이미지가 좋지 않은 단점이 있지만, 정권안보와 관계되는 일을 하다 보니 이 부서를 거치면 출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나라당 C의원이 대공수사국장 출신. 그러나 현재는 대공수사국도 이름이 안보수사국으로 바뀌는 등 역할이 축소돼 가는 추세다.
반면 DJ 정부 이후 경제과가 새로이 각광받는 부서로 등장했다. 한 국정원 관계자의 설명. “이종찬(李鍾贊) 원장 이후 역대 원장들이 경제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다, 벤처 붐과 맞물리면서 ‘돈’과 관련된 업무를 취급하는 경제과에 대한 직원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 돈과 관련된 비리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DJ정부 때 사법처리된 김형윤(金亨允) 전 경제단장과 정성홍씨 등의 비리 혐의도 따지고 보면 벤처와 관련된 것이다.
‘요직’이나 인기 있는 부서로 가기 위한 경쟁, 또는 승진을 위한 ‘로비’가 그 어느 정부 부처보다 치열한 것이 국정원의 현실이다. 퇴직하면 다른 전직(轉職) 통로가 없는 것도 내부 경쟁을 심화시키는 한 요인이다.
이러다 보니 국정원에서는 권력을 동원한 인사로비가 예사로 이뤄지기도 한다. 권력 실세의 ‘내 사람 심기’와 직원들의 출세욕이 맞물려 지역 편중인사 시비가 끊이지 않고 권력이 바뀔 때마다 인사태풍이 분다. DJ 정부 때는 호남 편중인사가 논란이었으나 현재는 오히려 호남 출신들이 “과거에는 목을 쳤는데, 지금은 은근히 뒤통수를 치면서 퇴진을 유도한다”며 인사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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