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날, 빨간 사과나무 아래 그림을 그리는 젊은 부부와 어린 아들이 뛰어 노는 행복한 전원 풍경에 대한 예상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집 바로 옆 부부의 작업실로 들어섰다. 두 사람의 화구(畵具)와 캔버스, 다섯살배기 아들 장난감으로 어수선했다. 둘이 같은 길을 걷는 예술의 동반자라는 사실에서 떠올렸던 낭만적 환상이 또 한번 깨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유학 갔던 강씨가 고향에 내려온 것은 99년 9월. 대학 동기동창인 서울내기 신부를 맞아 함께 미술학원을 운영했지만, 외환위기에 따른 경기 불황으로 수강생이 뚝 끊기자 결국 짐을 쌌다.
시원찮은 남편 때문에 곱게 자란 아내가 촌구석에 내려오게 됐구나, 한없이 미안했지만, 아내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때만 해도 어차피 오래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잠시 여행가는 것으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는 젊었다. 고생하는 부모가 안쓰러워 팔을 걷어붙였다가 차츰 욕심이 났다. 어떻게 하면 상품 가치를 높일까 고민하다 사과 따기 직전 햇빛과 테이프를 활용해 스마일 문양을 새기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행복한 사과’란 브랜드까지 만들어 인터넷에 소문을 냈다. 주문이 밀려들었다. 바야흐로 벤처 농업인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뼈 빠지게 노력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농사일이었다. 가지치기, 농약치기, 비료치기, 사과 따기…. 1년 내내 일에 매달리는 것도 힘든데 판매까지 하려다 보니 힘에 부쳤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어야만 주문 접수부터 애프터서비스까지 가능했고 신선한 사과만 골라 보냈는데도 썩은 것을 보냈다는 항의를 받기 일쑤였다.
사과로 돈 벌어 그림 그리자던 결심을 3년 만에 접었다. 농사는 부모님 일손을 도와주는 수준으로 만족하고 각자 그림에 몰두하기로 했다. 물론 이 길도 쉽지 않았다.
남편이 돈 벌고 아내가 살림하는 보통의 가족들도 해결할 문제가 산더미인데, 농사하고 살림하고 아이 키우며 각자 작업을 하는 부부의 일상이야 어떠하랴. 우는 아이 달래고 하루 네다섯번씩 상 차리고 농사를 짓는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도 부부는 번갈아 아이를 봐주며 한 차례씩 개인전을 열었다.
시골 생활과 농사 경험은 이들의 삶에 대한 생각과 작품세계를 몽땅 바꾸어 놓았다.
“세상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 도시에 살 땐 1등만 최고인 줄 알았는데 세상이란 반드시 1등만 사는 곳이 아니더라고요.”
자연 속에서 느긋함과 여유를 얻었다는 남편 강씨는 이름 없고 하찮은 풀들을 수묵으로 표현한 ‘나도 군자’ 시리즈에 이런 생각을 담았다.
“도시에 살 때 사과는 달콤함의 상징이었죠. 한마디로 편안함과 세속의 뜬 구름 잡는 낭만에 익숙해 있었던 거죠. 하지만 삶은 환상이 아니지요.”
삶의 치열함과 일상에 주목한 아내 박씨는 자신의 삶을 바꾼 ‘사과’를 소재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녀에게 사과는 생존의 상징이다. 마침 7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창에서 박씨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풍기=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