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백영호 옹 “청춘스타 찍다 어느덧 백발인생”

  • 입력 2003년 10월 7일 19시 04분


30년 된 니코마트 카메라를 든 채 포즈를 취한 원로 영화 스틸 사진가 백영호옹. -변영욱기자
30년 된 니코마트 카메라를 든 채 포즈를 취한 원로 영화 스틸 사진가 백영호옹. -변영욱기자
영화스틸 사진가 백영호(白泳浩·80)옹.

서울 영등포구 대림1동에 있는 그의 허름한 이층집은 ‘한국영화 역사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거실에는 ‘생명’(감독 이강천, 주연 김승호)과 ‘몽녀’(감독 임권택, 주연 김지미) ‘땡볕’(감독 하명중) 등의 대형 포스터들이 걸려 있다. 2000년 이탈리아영화제에서 특별 전시돼 호평 받았던 그의 작품들이다. 거실의 자료더미를 헤치고 옆방에 들어서면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를 아우른 영화사진과 포스터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백옹이 사진에 담은 고 김승호의 털털한 미소(‘생명’)나 신영균의 비장한 칼놀림(‘임꺽정’)은 한국 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반추하는 표본으로 지금도 살아 숨쉰다.

영화 스틸(still)은 ‘스틸 픽처’ 또는 ‘스틸 포토그래프’의 약어. 영화의 주요장면을 담은 사진으로 영화의 홍보수단이자 기록물로서 가치를 가진다. 검열에서 삭제된 장면이나 NG장면 등 진기한 것들도 적잖지만 체계적인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백옹 역시 6·25전쟁 때 ‘유관순’(1947)의 영화 스틸을 모두 분실했지만 몇 년 뒤 오래된 책 속에 꽂아두었던 NG 컷 몇 장을 찾아내기도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영화필름이 많이 사라진 상황에서 백옹의 자료들은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게 조희문 상명대 연극영화과 교수의 평가다.

그가 카메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42년,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 2년을 중퇴하고 일본인이 운영하던 서울 용산의 ‘선 사진관’에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부터. 1947년 이화여고 미술선생의 부탁으로 미술반 기념사진을 찍으러 간 경주에서 영화 ‘유관순’의 윤봉춘 감독에게 즉석 촬영을 제안받고 얼떨결에 스틸 사진을 찍었다. 사진관에 앉아 필름을 보는 것보다 밖으로 돌아다니며 촬영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느낀 것도 이때였다.

6·25전쟁 참전으로 그의 영화 스틸 인생은 잠시 ‘쉼표’를 찍지만 1955년 전역 후 ‘수도영화사’ 스태프로 입사하면서 다시 이어진다. ‘생명’은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인 동시에 스틸사진 초년병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른 작품이기도 했다. 매일 촬영한 사진을 영화감독 등에게 보이면 “이게 사진이냐, 스틸이냐”며 구박당하기 일쑤였다.

“영화 스틸은 배우들의 살아 있는 표정을 순간적으로 잡아내야 하거든요. 일반 사진과 영화스틸 사진의 차이를 그때서야 알았어요. 대본을 수차례 읽고 작품의 어떤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인지 파악해야 했지요.”

그때부터 백옹은 영화 촬영 현장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꼬박 따라다녔다. 매일 촬영이 끝나도 현상작업이 이어져 쉴 틈이 없었다. 영양주사를 맞으며 74시간을 꼬박 뜬눈으로 보낸 적도 있다.

“일에 미치지 않았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쥐꼬리만한 월급이지만 그나마 제때 받지도 못해 국수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죠. 아내는 ‘차라리 막노동이라도 하라’며 타박했지만 이미 내 분신이 돼버린 카메라를 차마 버릴 수 없었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매달리면서 그가 찍은 작품은 120여편. 특히 그는 ‘돌아온 왼손잡이’ ‘몽녀’ ‘깃발 없는 기수’ ‘만다라’ 등 10여편을 함께 만든 임권택 감독을 ‘최고’로 꼽았다. “며칠 전 부산 국제영화제 행사장에서 임 감독을 만났는데 ‘꼰대 또 왔느냐’며 서로 농담을 건넸어요. 한창 때는 부둣가에 앉아 4홉들이 소주 7병을 나눠먹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죠. 하지만 임 감독은 작품에 관한 한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고 정확해요.”

가슴 아픈 기억도 있다. 1993년 ‘남자 위의 여자’ 촬영 도중 헬기 추락사고로 7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 백옹은 이날 헬기에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줌렌즈 고장으로 선착장에 남아 있었다. “헬기가 뜨기 직전 한 촬영기사가 ‘일 다했네’라고 웃어넘기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백옹은 2000년 국방영화 ‘아름다운 연인’을 끝으로 영화 스틸사진 작업을 그만뒀다. 하지만 요즘도 부천, 전주, 광주, 부산 등 국제영화제 현장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엔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려가 거리에 전시된 세계 각국의 영화 포스터와 풍경들을 촬영했다. 10년 뒤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한국 영화사를 되돌아보는 요긴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각종 경비를 스스로 조달한다.

내년 초에는 ‘영화스틸사진작가 백영호 사진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사진집에는 백옹이 반세기 이상 촬영해 온 영화스틸 사진과 각종 영화제 사진,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안양종합촬영소 등 한국영화의 소중한 사료들이 담기게 된다.

이런 백옹의 보물 제1호는 30년 된 ‘니코마트’(니콘의 전신) 카메라. 무겁고 여기저기 긁혀 천덕꾸러기 모습이지만 아직도 최신 카메라보다 사진의 질감이 뛰어나다는 게 그의 얘기다. 비록 영화스틸은 젊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눈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절대 사진기를 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백영호 옹은…▼

△1923년 7월 23일 서울 출생

△성남중 2년 중퇴

△1942년 ‘선 사진관’ 문하생으로 사진계 입문

△1947년 영화 ‘유관순’(감독 윤봉춘)으로 영화 스틸 작업 시작

△2000년 이탈리아 영화제와 2003년 광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전 개최

△대종상 스틸 부문 수상(1991)

△주요촬영작은 ‘생명’(1957) ‘임꺽정’(1968) ‘상록수’(1978) ‘만다라’(1981) ‘길소뜸’(1985) ‘어린 연인’(1994) 등 120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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