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운데서도 최다 수사인력을 지휘하는 서울지검장, 검찰의 인사 실무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 특수수사의 지휘사령탑인 대검 중앙수사부장, 선거와 노사(勞使)문제 등을 관장하는 주무부서인 대검 공안부장이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
이들 요직은 정권 핵심의 신뢰가 있어야 맡을 수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고위간부 인사 뒤 “어느 검사장은 누구와 가깝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갔다”는 등의 뒷말이 무성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권력과의 인연’이 우선 고려사항이 되다보니, 격에 맞지 않는 인물이 요직에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90년대 말 서울지검장에 발탁됐던 한 인사는 스스로 “떡이 너무 커서 잘 먹을지 모르겠다”고 주변인들에게 말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 검사장은 출신 지역이 당시 대통령 주변인사들과 가까운 데다 특정 사건을 권력 핵심층의 입맛에 맞게 처리했다고 해서 특혜를 받은 케이스로 알려졌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는 권력과 검찰 내의 호남출신 인맥 사이에서 검찰의 특정 보직은 정권 안보 차원에서 호남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오르내리기도 했다.
요직 검사장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3월 12일 인사 때 서울지검장에서 대검 마약부장으로 ‘좌천’된 뒤 퇴임한 유창종(柳昌宗) 변호사는 서울지검장 이임사에서 검찰 인사의 정치편향성을 비판했다. 그는 “정권 교체기마다 집권자는 검찰 간부가 구시대에 물들었다는 명분으로 청산한 다음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장악하고 새로운 ‘정치’ 검사를 배태시켜 온 악순환을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이 정부 들어선 뒤 청와대 내에서 검찰과 권력의 ‘특별 관계’가 논란이 된 일이 있다. 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어떤 ‘실세 비서관’이 검찰 핵심간부 모씨를 자기가 임명했다고 하더라”고 일부 기자들에게 발언한 것. 이에 대해 그 ‘실세 비서관’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권력 내에서는 이를 두고 구구한 억측이 나왔다.
이런 ‘소문’이 나오게 된 데는 배경이 있다. 검찰청법 34조는 ‘검사의 임명 및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검사 개개인의 면면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이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초 검찰 인사는 사정이 달랐다. 노 대통령이 3월 평검사들과의 토론회에서 청와대 비서관 두 명을 일으켜 세워 ‘이 사람들이 검찰 인사를 했다’는 식으로 언명한데서 보듯, 청와대측이 ‘법에 따라’ 검찰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한 것이다. 물론 당시 청와대는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과 사전협의 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정황상 청와대 비서관이 검찰 간부를 임명했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게 돼 있었다는 얘기다.
법무부 검찰국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참작해 실무안을 만든 다음 장관과 총장이 이에 대한 협의 과정을 거쳐 인사안을 확정해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관행도 지켜지지 않았다. 장관과 총장의 협의 절차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필수절차로 인식됐으나 강 장관은 이에 제동을 걸었다.
김각영(金珏泳) 전 검찰총장이 3월 10일 퇴임을 앞두고 “거짓말하는 장관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며 강 장관을 비판한 것도 협의절차 부재를 지적한 것이었다. 그는 “강 장관이 ‘(검찰 간부 인선안에 대해) 나중에 협의하겠다’고 말해 놓고도 전화로 고검장 승진자 명단을 일방적으로 불러줬다. 협의가 사실상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둘러싼 청와대와 검찰총장의 갈등은 과거에도 있었다. 김대중 정부 후기 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이 자신과 협의한 검사장 인사안을 갖고 청와대에 다녀온 뒤 갑자기 인사 내용 일부를 바꾸겠다고 통보하자 사의를 표명했던 일이 있다. 그는 간부들의 만류로 사표 제출을 유보하긴 했지만, 이 사건은 검찰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런 논란과 시비를 막기 위해서는 검찰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인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거부터 제기됐지만 ‘공정 인사’는 아직은 요원한 상황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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