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푸닥거리(?)를 하고 난 후에는 그림들의 완성도도 높아지지만, 마음까지 충만해진다고 했다.
고교시절 고고학자를 꿈꾸다 화가로 맘을 바꾼 것은 자신이 살던 춘천의 밤 때문이었다고 한다. 밤 10시경 교문을 나서면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 중앙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와 가로등, 섬 수평선 위에 녹아내리던 낚시꾼들의 카바이드 불빛들. 그런 어둠과 그림자를 그리고 싶어 미대에 갔다.
그는 자신의 20대를 “우울한 짐승의 시대였다”고 회고한다. 처음 떠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엄습하는 이질감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럴수록 내면은 황량해졌다.
군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지만 어려서부터 낯익은 산천을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고향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아내를 도우면서 작고 조용한 그림을 그리던 그는 귀향 10년 만인 98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보낸 3년5개월간의 유학생활. 중국인들은 가난했지만 관대했다. 비록 이 생의 삶이 힘들더라도 항상 먼 곳에 시선을 두는 그들의 여유를 보면서 낙관과 관조를 배웠다. 다시 고향에 돌아온 그는 캔버스에 자신의 꿈을 담은 이상향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당이 예쁜 그의 집에 딸린 화실에선 다양한 이상향의 세계들을 만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듯, 빽빽한 숲 한가운데 작은 집 한 채가 있고 달빛이 그득한데 부부가 책을 읽는다. 산자두꽃 무성한 산길에서 집 앞을 소요하는 화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밭 가운데서 뛰노는 아이들… 따뜻하고 담백한 그의 캔버스를 바라보면, 세속의 걱정이나 두려움은 저만치 물러간다.
새벽마다 물안개 자욱한 춘천 소양강변은 그에게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안식처이자 ‘정신적 망명의 공간’이다. 소양강변을 거닐며 작품 구상을 자주 하는 그는 자신도 들꽃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좀 더 나이 먹기 전 옛날 민화를 그리던 화인(畵人)들처럼 ‘떠돌이 화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화가 이광택씨는 어수선한 이 시대에 느리지만 차분하고 깊은 사유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진정한 야인(野人)이다.춘천=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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