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에 ‘문화’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68년 문화공보부 시절부터다. 그러나 문화는 뒷전이었고 대언론 공보 기능이 위주였다. 노태우(盧泰愚) 정부 시절 3년여간(1990∼1993년) 문화부라는 독립 부처로 존재했고, 그 뒤 체육청소년부(전 체육부)와 통합돼 문화체육부가 됐다.
‘공보 우대’로 역대 장관들은 언론인이나 정치인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문공부에서 지금 문화관광부에 이르기까지 35년여간 25명의 장관이 재직했지만, 언론인을 제외한 문화계 출신은 정한모(鄭漢模) 이어령(李御寧) 김한길(金漢吉) 전 장관과 이창동(李滄東) 현 장관 등 네 명에 불과하다.
문화부의 한 간부는 “문화부 소관 업무 중에 ‘얼굴’을 내미는 행사가 많아 이곳을 사전 선거운동을 위한 자리쯤으로 여기는 장관도 있었다”고 말했다. 산하 기관을 포함해 1745명의 직원과 ‘문화예산’ 1조3930억원(2004년·정부 재정 대비 1.19%)을 다루는 ‘중요’ 부처이지만 외풍이 강했던 것이다.
이 장관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언론정책 등과 관련해 ‘코드’가 일치한다는 평가다. 그러나 향후 정치활동에 대해 김찬(金讚) 공보관은 “이 장관은 장관 임기를 마친 뒤 영화계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전한다.
차관은 대부분 내부 승진 케이스다. 오지철(吳志哲) 현 차관을 비롯해 박문석(朴紋奭) 김순규(金順珪) 신현웅(辛鉉雄) 이경문(李庚文) 김동호(金東虎) 허만일(許萬逸) 전 차관 등 역대 차관이 문체부나 문화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오 차관은 문체부의 국제체육국장과 문화관광부의 문화정책국장 등을 지낸 체육과 문화통이다.
문화부에서는 기획관리실장 문화정책국장 문화산업국장이 요직으로 꼽힌다. 신현택(申鉉澤·행시 18회) 기획실장은 ‘인화형 마당발’로 통한다. 문화산업국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각광 받는 부서로 6개 과를 거느리고 있고, 문화정책국은 정책총괄부서로 차관이나 기획관리실장들이 거쳐 간 자리.
문화부 인사의 특징은 특정 인맥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신 실장은 “문화 관광 체육 공보 등 이질적인 출신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특정 계보가 자리 잡을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다면평가 인사로 ‘비계보 비인맥’을 더 흔들어 놓았다. 차관을 빼고 거의 모든 자리를 바꾸었으며 이성원(李成元·행시 23회) 문화정책국장, 이보경(李普京·행시 22회) 문화산업국장, 권경상(權慶相·행시 23회) 관광국장, 백익(白익·행시 27회) 예술국장 등이 문화 관광 예술통으로 ‘전공’을 찾아간 것으로 평가받는다. 체육통인 배종신(裵鍾信·행시 21회) 차관보 이하 본부 실국장 14명의 학연이나 출신 지역에서 뚜렷한 경향을 찾기 어렵다.
조현재(趙顯宰·행시 26회) 청소년국장은 이 장관의 발탁 케이스로 부이사관 승진과 동시에 국장 보직을 받았다. 해외연수 중인 유진룡(劉震龍·행시 22회) 전 문화산업국장과 박양우(朴良雨·행시 23회) 주뉴욕 문화원장은 동기보다 일찌감치 국장을 지낸 차세대 주자다.
그러나 문화부는 공보처에서 흡수한 인원(170여명) 등으로 인사 적체가 심해 사무관만 12년 넘게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예술종합학교 예술원 등 산하기관의 경우 국립중앙도서관장 외의 다른 기관장은 모두 전문예술인 출신이고 문화부 공무원은 일반 행정직에서만 순환 인사가 이뤄진다.
여성 과장은 서영애(徐英愛·행시 33회)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연수과장과 박명순(朴明順·행시 34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과장 등 2명이 전부다. 그러나 행시 40회 이후 25일 배치 된 46회까지 10여명의 여성 사무관들이 활약 중이거나 할 예정이어서 5, 6년 뒤면 문화부에 여성 인맥이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허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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