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山別曲]<12>박달재의 초보 농사꾼 소설가 임영태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22분


제천=김미옥기자
제천=김미옥기자
길이 1960m의 박달재 터널을 통과하고 200년 넘게 산 소나무를 지나 소설가 임영태씨(45)의 집에 다다랐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 시랑산 자락. 임씨는 마당에서 진돗개 태인이와 모정이, 풍산개 박달이의 점심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임씨가 부인 이서인씨(43·소설가)와 이곳에 내려온 것은 지난해 8월. 메마른 서울살이에 지쳐 2, 3년 동안 시골을 다니며 살 곳을 물색하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 모정리에 눌러앉았다.

도시의 계산적인 인간관계, 속도전 같은 삶에서 비켜나고 싶어서였다. 휴대전화를 없애고 텃밭에 드나들기 편하게 긴 장화도 마련했다. 아내와는 “이 집에서 생을 마치자”고 약속했다.

농한기라 일 없는 요즘 슬렁슬렁 동네에 가서 “형님, 소주 좀 꺼내봐요”하고 너스레를 떨거나, 새벽에 서리 내린 밭을 바라보며 사람살이의 애틋함을 느낀다.

그는 40년이 넘도록 가게에서 사 먹던 것들을 이제는 직접 가꾸는 농사꾼이 됐다. 올해 집 앞 텃밭 300여평에 참외 수박 오이 땅콩 등 스무 가지 작물을 심었으나 절반의 소출도 거두지 못했다. 참외는 구경도 못했고, 수박은 자라다 짓물러 버렸다. 내년에는 가짓수를 대폭 줄여 제대로 길러볼 작정이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농부가 되지 못한다. 소설가가 자기 삶의 근본 자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서리에 썩어가는 콩을 보며 소설을 생각하죠. 미안하다, 말하며….”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소설을 썼다. 간간이 신춘문예에 응모도 했지만 꼭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지는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문득 ‘이게 아닌데’ 싶어 다시 소설을 찾았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전업작가로 ‘전향’했고 한동안 컴퓨터 책을 써서 먹고 살았다. 94년에는 장편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상을 받은 이후 소설 쓰기에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삶이 확장되고 깊어져야 소설도 그렇게 될 것이야, 자기 삶 이상의 소설은 나오지 않을 텐데…. 내가 터무니없이 진지하고 조용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술 취해 객기 부리고 의식적으로 파격과 일탈을 일삼던 시절을 10년 가까이 보냈다.

“그런 갈등을 통해 사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그러나 다른 기질을 기웃거리기보다 나 자신에 좀 더 충실했다면 더 많이 성숙하고 더 일찍 자유로워졌을 거예요.”

그는 ‘고요한 겸손’을 찾아 자연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아침에 눈뜨면 무엇이 가장 먼저 보이는지, 밤에 무슨 소리 들으며 잠드는지, 비 오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 무엇인지,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늘을 보는지…. 이 같은 일상의 자잘한 차이들이 사물을 보는 법과 받아들이는 태도를 바꾸고, 가져야 할 것과 버릴 것을 나누는 잣대도 달라지게 했다.

12월 초 12년 만에 첫 창작집 ‘무서운 밤’(문이당)이 나오고, 그의 소설 ‘비디오 보는 남자’를 원작으로 한 같은 이름의 영화가 28일 개봉한다. 문학인생의 절정을 향해 그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제천=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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