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피평가자의 일정 수가, 특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실적이나 업무능력보다 윗사람의 편견과 호불호에 의해 평가가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A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 류지성(柳志成) 수석컨설턴트는 “어떤 조직도 인사평가에서 지역 학벌 성별 용모 등에 따른 편견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또 과거의 한 번 실수가 지속적으로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후광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K대리는 몇년 전 팀내에서 최하위 실적을 기록한 일이 있다. 그 뒤 상사는 평가점수가 우수한 다른 직원에게 팀의 핵심 업무를 맡기고 K대리에게는 매출실적을 내기 어려운 고객군을 관리하도록 했다. 그 뒤 이 상사는 각 부하사원의 업무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실적만 따지게 되면서 K대리는 평가 때마다 하위권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중견기업 관리파트에서 일하던 L씨는 부서장과 사사건건 충돌하곤 했다. ‘회사 내의 주류’라는 의식이 강한 부서장이 다른 회사에서 이적해 온 자신에게 텃세를 부리는 것으로 판단한 L씨도 물러서지 않고 대들어 충돌이 빚어졌던 것. 지난해 평가 때 1차평가자인 부서장은 L씨에게 전 항목 C평점을 줬다. 조정권자인 팀장이 개입해 일부 항목 점수는 상향 조정됐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L씨는 요직으로 꼽히는 그 부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직자, 특히 정무직의 경우 출신지역 등에 의한 편견이 강하게 작용한다. 지난해 모 정부 부처의 외청장 물망에 유력하게 올랐던 1급 공무원 J씨는 정치적 편견에 희생돼 외청장이 못 된 것은 물론 한직으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었다. 특정고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모 정당에 가까운 인사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공·사의 조직에서 인사권자나 평가권자들이 이렇게 편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DJ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한 교수 출신 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 부임해 보니 도대체 믿을 사람이 없었다. 보고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국장급 가운데 나에게 배운 사람이 있었다. 설마 제자가 속이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에 자연히 그 사람을 신뢰하고 중용하게 되더라. 솔직히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더라.”
공직사회처럼 개인별 업무실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 분야일수록 편견이 인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객관적 실적 기준이 모호할 때 ‘윗사람’들은 우선 충성심을 따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혈연 학연 지연에 의한 인사가 이뤄지기 쉬운 것이다.
제도가 편견을 배제한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도 ‘구멍’은 있다. 예를 들면 3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의 승진 때는 부처별 보통심사위원회와 중앙인사위원회 등 2단계 심사를 거쳐 특정 상사의 편견이 개입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보직 이동 때는 그 같은 통제장치가 없다. 부처의 장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요직에 발령 내면 그만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편견이 끼어들 소지가 많은 것이다.
기존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들어 다양한 형태의 신인사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평가 과정에서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협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평가 결과에 대한 피평가자의 이의 제기를 제도화하는 조직이 늘고 있다. 상사뿐 아니라 동료 및 부하들의 평가를 인사에 일부 반영하거나 참고하는 ‘다면평가제’도 등장했다.
그러나 ‘편견 없는 공정한 인사’는 결국 인사제도를 운영해나가는 사람들, 특히 조직 최고책임자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운영이 잘못되면 그 제도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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