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46년 친형인 고 허주열(許周烈) 명예회장 등과 “쇠를 위주로 하는 제조업을 해야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데 의기가 투합해 대원강업의 전신인 대한철강을 설립해 스프링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대원강업은 54년 기차용 스프링, 55년 자동차용 스프링을 차례로 개발하면서 스프링 업계의 강자로 뛰어올랐다.
특히 빨간색으로 도색한 버스용 판스프링은 모조품이 등장할 정도로 운수업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빨간 스프링’은 한국 스프링의 대명사였다.
1960년에 사명(社名)을 지금의 대원강업으로 바꿨으며 현재는 자동차용 스프링 분야에서 국내 시장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 강자’다. 지난해에는 자동차업계 1위인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3600억원.
형제가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 고 허주열 명예회장은 회사 총괄업무를 맡았으며 고인은 주로 생산분야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이 때문에 고인은 지난해 12월까지 회사에 출근하면서 매주 한 번은 반드시 공장에 들를 정도로 현장을 중시했다.
특히 공장에 들어섰을 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듣고도 기계의 이상 여부를 알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회사 안팎에서는 그를 ‘기계와 쇠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장인(匠人)’으로 평가해 왔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