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허 웅 한글학회 회장

  • 입력 2004년 1월 26일 19시 17분


허웅 회장은 늘 “한글은 우리 겨레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모든 문화활동의 바탕이자 그릇”임을 강조해 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허웅 회장은 늘 “한글은 우리 겨레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모든 문화활동의 바탕이자 그릇”임을 강조해 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국어학의 주춧돌을 놓고 외솔 최현배 선생이 그 집을 지었다면, 눈뫼 허웅 한글학회 회장은 끊임없이 그 집을 보수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아름다운 한글을 만들었다. ‘한글은 민족정신의 요체’라는 이들의 믿음은 3대에 걸쳐 이어지며 한결같은 한글 사랑으로 실천됐다.

두 스승의 뒤를 이어 한글학회를 30여년간 이끌어 온 허 회장은 1918년 경남 김해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인 1932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우연히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을 읽고 국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해 최현배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한글연구에 뜻을 두었으나, 그해 7월 최현배 선생이 일제하 민족운동 탄압사건인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자 이듬해 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에 내려가 15세기 국어문법을 공부하며 홀로 한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김해에서 한글강습을 열어 우리말을 보급하기 시작했고, 그 후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53년부터는 부산대 성균관대 연세대 서울대 등의 교수를 역임하며 후진을 양성했고, 줄곧 정부의 국어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60년 한글학회 이사로 선임된 그는 1968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0년부터 한글학회 회장 및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를 맡아 국어학과 한글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고인은 한글학회 회장으로 학술지 ‘한글’과 ‘한글 새소식’을 꾸준히 펴내는 한편, 순 우리말 이름을 권장하기 위한 ‘온 겨레 한말글 이름 큰잔치’와 외국의 한국어교사 연수를 마련하는 등 국내외 한글보급 사업에 앞장섰다.

고인은 이 같은 공로로 1973년 제2회 외솔상(학술 부문), 1984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6년 제1회 성곡 학술문화상, 1990년 제9회 세종문화상(학술 부문), 1993년 제1회 주시경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허웅 회장 약력▼

△1918년 경남 김해 출생

△1939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1년 중퇴

△1953∼84년 부산대, 성균관대, 연세대, 서울대 교수 역임 △1968년 서울대 문학박사

△1970∼2004년 한글학회 회장 △1984∼2004년 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주해 용비어천가’ ‘국어음운론’ ‘중세국어 연구’ ‘우리 옛 말본’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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